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사실... 안녕하세요. 슬로우스타터 단팥입니다.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클라이밍 에세이를 쓰고 있지만 사실 3개월째 클라이밍을 못 하고 있어요. 볼더링 문제를 풀다가 30센티 정도 되는 아주 낮은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왼쪽 발목을 접질리면서 실금이 갔거든요. 한 달 동안 깁스하며 오른발만 쓰다 보니 이번엔 오른발에 염증이 생겼어요. 염증이 도무지 가라앉지 않아 클라이밍을 압수당했습니다. 😭
클라이밍을 해야 에세이 소재도 발굴할 수 있을 텐데요.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고민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다 클라이밍을 하게 됐지?’ |
생존의 몸부림이 성취감으로
제 운동의 역사를 훑어보면 그 출발선에 수영이 있습니다. 때는 2017년, 인턴으로 직장인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어요. 하루 8시간을 꼬박 앉아있으니 원래 있었던 허리디스크가 다시 도졌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일단 살고 보자!는 마음으로 수영 강습을 등록했어요.
어릴 적 목욕탕에서 빠져 죽을 뻔한 경험이 있어 수영은 하나의 도전이었는데요. 물이 무서운지라 남들보다 배우는 속도가 더뎠습니다. 한 달이 지나도록 킥판을 떼지 못했죠. 킥판 없이는 물에 못 뜰 줄 알았는데 킥판을 뗐을 때의 성취감이란! 정말 짜릿했습니다. 물론 선생님이 강제로 킥판을 빼버려서 어쩔 수 없는 성취였지만요.
그때부터였습니다. 운동을 싫어하던 제가 수영에 빠져든 건. 수영은 정말 성취감 투성이었어요.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까지 다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영법 교정은 끝이 없었고요. 스타트 자세와 물잡기 등 배움이 계속됐죠. 그런데 파워 접영을 하던 중 갑자기 허리가 따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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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복근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뱃살이 있어요! |
성취감이 행복감으로
그렇습니다. 프로 근육 부족러였던 저는 코어가 약했습니다. 아아, 좋아하는 수영을 할 수 없다니… 그렇다면 이제 코어를 키워보자는 결론을 내립니다. 2018년, PT의 시작이었어요. 말라깽이가 근육을 키우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려운 일을 해낼 때 행복감을 느끼게 세팅된 사람이었어요. 운동을 하며 처음 깨달은 저의 새로운 모습이었죠.
그냥 수영을 잘하고 싶었을 뿐인데 정신 차리고 보니 바디프로필까지 찍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운동이 이토록 재미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고 살았을까요? 왜 학교 체육은 도무지 즐겁지 않았던 걸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앞으로 배울 수 있는 운동은 무궁무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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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염과 돌발성 난청으로 못하게 될 줄 모르고 장비부터 샀던 프리다이빙🧜♀️
스노클 사고 한 번 썼지만 언젠간 꼭 다시 할 거예요! ㅠㅠ |
행복감이 새로운 도전으로
본격적으로 운동에 재미를 느끼면서 색다른 운동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원데이클래스를 통해 프리다이빙, 서핑 등 이색 스포츠를 즐겨보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2021년, 클라이밍을 영접하게 됩니다! 역시 원데이클래스로 서울숲 클라이밍을 방문했는데요. 열심히 수업하던 중 선생님이 묻더라고요.
“클라이밍 처음 맞으세요? 혹시 운동하는 분이세요?”
그동안 운동에 쏟아부은 돈이 아깝지 않아지는 질문이었어요. 솔직히 월급의 너무 많은 부분을 운동에 쓰지 않나 걱정한 적도 있었거든요. 무엇보다 운동으로 달라진 신체 능력을 느낄 수 있는 칭찬이었습니다. 수영을 처음 배울 때는 몸치라고 많이 놀림 받았거든요. 수영계에서는 몸치인 나도 클라이밍계에서는 에이스인가? 하며 속으로 뿌듯했습니다.
그렇게 또 정신 차려보니 클라이밍 강습권을 결제하고 있었더랬죠. 그다음에는 암벽화와 초크백을 결제하고 있는 나… 그리고 에이스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진짜 에이스 클라이머들에게 “나이스”를 외쳐주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에이스가 아니면 어때요. 재미있으면 그걸로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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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를 쓰면서 첫 클라이밍 영상을 봤는데 에이스라고 하기엔 너무 못하더라고요! 클라이밍 영업을 위한 선생님의 하얀 거짓말이었나봐요. |
일단 벽에 붙어보세요
길게 쓴 것치고는 너무 사소한 이유로 클라이밍을 시작하게 됐는데요. 클라이밍을 하다 보면 루트파인딩만으로는 안 풀리던 문제가 막상 벽에 붙어보면 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스타트 홀드를 잡았더니 다음 홀드가 자연스럽게 보이고, 또 다음 홀드가 보이죠. 저는 수영을 잡았더니 웨이트 트레이닝이 보이고, 웨이트를 잡았더니 클라이밍이 보였네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무슨 일을 시작할 때 꼭 엄청난 계기가 있는 경우는 드물더라고요. 인생의 중대한 결정들도 사실은 사소한 이유로 마음먹기도 하고요. A라는 일을 시작했더니 B, C, D가 밀물처럼 밀려오기도 하죠. 혹시 오랫동안 루트파인딩만 하고 있는 일이 있나요? 그렇다면 과감히 스타트 홀드를 잡아보라고 조언해드립니다. |
어쩌다 클라이밍을 하게 되었는지 길고 사소한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계기로 클라이밍을 하게 됐나요? 여러분의 첫 클라이밍 이야기를 공유해주세요. 저처럼 사소한 이유여도 좋고, 클라이밍으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거창한 이유여도 좋습니다.
그나저나 빨리 발이 나아야 즐거운 클라이밍 생활을 계속할 텐데요. 구독자 여러분은 모두 안전하고 즐거운 클라이밍, 안클즐클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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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레터에 익명의 답장이 왔습니다. 시느가 읽고 감동의 눈물을 흘림과 동시에, 팀원 모두에게 용기가 되어준 리뷰를 살짝 공개합니다. 따스한 관심과 사랑 감사드려요. 랜선 그랜절 올립니다. 🙇 |
저도 키 156에 암리치 153인 작은 클라이머입니다. 이런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에세이를 읽게 되어 정말 깊은 공감을 하고 가요. 저는 다른 친구들한테 클라이밍 영업을 많이 하는데 5개월을 꽉 채워 클라이밍한 저는 아직도 하늘도 겨우 풀지만, 리치가 정말 큰 친구들에게 처음 클라이밍을 시켜보면 가끔 저를 뛰어넘는 친구들도 있더라구요. 이런 좌절감이 간혹 들지만 그럼에도 클라이밍을 다니는 저 자신을 발견해서 이 에세이가 더더욱 공감됩니다. 좋은 에세이 감사해요! |
오늘 준비된 레터는 여기까지! 다음 레터인 시느의 클라이밍 에세이는 느릿느릿 출발 중입니다.🐌
오늘 레터는 어땠나요?
단팥의 에세이를 읽고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지 아래 링크에서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도 물 공포증이 있어요!"와 같은 감상평도 좋고, 오늘 레터의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남겨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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