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님의 최애 클라이밍 굿즈는?

물건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

2024. 9. 12.

To. 구독자 님

구독자 님은 긴 연휴를 앞둔 기분이 어떠신가요?

사실 휴일에 온전히 쉬기 위해서 어제 야근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게 맞나?' 의문이 들더라고요. 모처럼 긴 명절 연휴를 야근 없이, 휴일 출근 없이 맞이하길 바라면서! 오늘은 SWC 멤버들이 쓴 글을 보내드려요.

혹시 명절에도 클라이밍 하신다면 안전하게 즐기시길 바라요! 모두 행복한 추석 보내세요. 💝

📝SWC

Why I’m Fat?

사람을 믿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에. "언제 한번 밥 먹자"라는 말은 들었지만 밥을 먹은 적은 없고, "다음에 또 만나자"고 한 대외 활동 단톡방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상처를 받았던 스무 살의 내가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사회에 찌든 서른 살의 아저씨가 되었기 때문일까. 지금에 와서는 입은 웃지만 눈은 웃지 않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친구들을 처음 만날 때도 그랬다. 어쩌다 인스타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었고, 지방 사람인 내게 "언제 한번 서울에 오면 같이 운동해요!"라고 이야기했던 사람들. 나는 그 말을 언제 한번 밥 먹자는 식의 인사치레라고 짐짓 생각하고 넘겨버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3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도 모르게 "3월에 서울 갈 것 같다"고 먼저 DM을 보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단순히 서울 여행 가이드가 필요했던 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날은 유난히도 추워서 '서울에선 정말 못 살겠구나'라고 생각했던 날이었다. 서울 암장에선 핫도그를 판다는 것도 알 수 있었고, 매트 위에 발을 안 올려두면 '한순간도 붙을 수 없구나'라는 것도 알게 되었던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암장 티셔츠를 구매했다. 그렇게 6시간 정도 암장에 살았을까, 자연스럽게 운동이 끝나곤 식사하러 그 동네 치킨집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시끌벅적 떠드는 소리로 가득했던 치킨집에 우리 목소리만 남도록,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아마 서로의 신변잡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끔은 장난도 치며 웃고 떠들었었겠지. 다만 그 날만큼은 내 이야기를 하면서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평소에 그다지 내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지금의 내 목표는 무엇인지 따위의 낯 뜨거운 이야기를 취기를 빌려 술술 털어놓은 것이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들이 인사치레로 한 ‘멋있다’라는 말이 그 날따라 나는 왜 이리 와닿았고 따뜻했던지.

그래서일까, 그 친구들과 나는 꾸준히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가끔은 내가 서울에 가고, 그들이 부산으로 내려올 때가 있는가 하면, 다 같이 광주로 떠나버리기도 했다. 여행이 싫어 생전 한 번도 부산을 떠난 적 없던 내가 이제는 먼저 올라간다고 연락을 하기도 한다. 무슨 옷을 챙길까라는 고민도 없이, 나는 항상 그들과 함께했던 그날의 추억이 생각나, "Why I’m fat"이라는 문구가 적힌 그날의 기념품을 가방에 먼저 챙기곤 한다.

사람을 믿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여전히 같이 밥을 먹은 사람보다 먹지 않은 사람이 더 많고, 짧게나마 얼굴을 자주 보는 사람보다 얼굴을 보지 못한 지 오래된 사람이 더 많은 인생이지만, 다만 그럼에도 나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져 복에 겨운 하루하루를 보내는 요즘이다. 누군가 "Why I’m fat"의 답을 찾았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먹고 자란 주변 사람의 사랑과 관심이 너무 많아서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어른이 되어버린 요즘인 것이다.

- 영빈

어쩌다 보니 밸런스보드 판매자가 되다

슬스레터에서 정해준 두 번째 주제는 클라이밍에서 나의 최애 굿즈입니다. 필자는 극 ISTP로서 관심, 즉 호기심이 동한 것은 열정으로 열심히 하고 그 외에는 냉랭한 면이 있습니다. 그런 저한테 클라이밍에 있어서 여태까지 최애 뒤에 붙는 굿즈는 없었습니다. 저한테는 최애 뒤에 붙는 것은 굿즈가 아니라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오버행 꼭대기에 붙어있던 저그 홀드를 한 달 노력 끝에 아웃사이드 자세로 잡았을 때 그 쾌감은 캬~ 더울 때 마시는 탄산음료 한 모금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글을 써야 하니, 굿즈라는 단어를 입안에 머금고 백번 정도 읇조리니 생각나는 제품이 있었습니다. 우선 이 제품은 단순한 밸런스보드입니다.

클라이밍을 시작한 후 1년 반쯤 돼서 이제 막 중급코스로 올라가면서 느끼는 것 중 첫 번째는 왜 오버행 코스에서 대각선으로 내려오기만 하면 떨어질까였습니다. '반동을 코어가 잡아주지 못하니까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떨어지는 것 같구나' 그런 생각을 쭉 해오다가 구매한것이 바로 밸런스보드입니다. 즉 클라이밍을 하면서 암벽화, 초크 외에 필요에 의해서 첫 번째로 구입한 제품이 밸런스보드이다 보니 이것이 저의 최애 굿즈입니다.

씨익~~^^ 이제부터는 판매자 입장이 되어보겠습니다. 밸런스보드는 우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을 일이 없습니다. 저도 직장에서 돌아와서 씻고, TV볼때 아니면 뭔가 몸이 찌뿌둥하거나 그럴땐 올라가서 시간을 보내죠. 그리고 올라가 있는 동안에는 오롯이 제 몸에만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현생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습니다. 신경이 다른 쪽으로 분산되면 즉시 옆으로 무너집니다. 그런 면에서는 클라이밍과 밸런스보드는 닮은 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밸런스보드를 하면 몸이 말해주는 신호에 민감해진다는 점입니다. 클라이밍을 하다 보면 몸이 여러 가지 말을 해준다는 걸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저 홀드를 잡으려면 오른쪽 무릎이 '날 이렇게 이런식으로 안쪽으로 돌리면 오른쪽 엉덩이가 벽에 붙으면서 잡을 수 있을거다' 이런 식으로 말해주는 거죠. 아니면 손가락들이 '더 이상 잡고 있으면 나중에 아플 거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밸런스보드는 몸이 말해주는 이런 의사 표현들을 빨리, 민감하게 캐치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굿즈, 즉 상품은 경제 용어입니다. 사람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목적은 물건을 소비해서 물건이 주는 심리적인 만족감을 얻고자 함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저를 포함한 클라이머분들은 이상한 경제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상품을 통한 보상이 아닌 클라이밍을 좀 더 즐기기 위한 경제생활을 하고 있으니까요. 여행도 국내여행이든, 해외여행이든 아니면 친구를 만나거나 심하면 지인 결혼식에 참석할 때도 동선상 주변 클라이밍장을 알아보고 거기에 맞추어서 계획을 짜는 클라이머분들이니까. 앞으로 60살 넘어서까지 클라이밍을 하면서 또 어떤 굿즈를 만날지 기대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 채영

꽃말

"네잎클로버의 꽃말이 뭔지 알아?"

"행운!"
"맞아, 그럼 세잎클로버의 꽃말은 알아?"
"아니, 뭔데?"
"바로 행복이야. (…) 누구누구야, 우리는 찰나의 행운을 위해 너무나 많은 행복을 지나치고 있는 건 아닐까?"

…따위의, 뭉클감동교훈 글귀를 신줏단지 모시듯 가지고 사는 편이다. 나의 모바일 사진첩에는 '기억할 것'이라는 이름의 폴더가 있는데, 뜻깊은 말이나 글을 보면 찍어 보관하는 서랍이다. 한낱 말글에 마음을 맡기며 사는 마음. 맡기지 않으면 허둥지둥한 내가 어디다 두고 내리거나 잃기라도 할 것처럼 나는 자주, 맘을 맡긴다.

애초에 이파리인 식물에 꽃말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한지는 차치하더라도, 네잎클로버를 발견해 본 경험은 거의 없다. 아마 아주 없는 듯도 하다. 어려서 소풍을 가면 곧잘 그런 풀이나 꽃을 찾으러 다녔던 것 같은데, 눈이 밝지 않은 나는 남들보다 먼저 뭘 발견하는 데는 서툴렀다.

그렇지마는 나는 이제 어른이. 많이는 아니어도 무용한 데에 제법 돈을 쓸 수 있게 된 성체. 때때로 어린 날의 결핍을 돈 주고 산다. 이번에 산 결핍은 네잎클로버 모양 키링. 인공암벽 홀드 재질로 만든 물건이다. 마음이 신산할 때 꺼끌꺼끌한 표면을 매만지면 심이 굳세어진다. 암장에서 느꼈던 작고 사소한 성취들이 떠오른다.

부상 이후에 더는 다치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산 물건이지만, 온통 무채색인 내 옷가지나 가방 틈에 혼자 푸르르하게 달려 있는 꼴이 퍽 예쁘다. 네가 꼭 내게 플러스 효과를 주지 않더라도, 그냥 그것으로 족하다. 그냥 그렇게 피어, 있어 주었음 한다. 아, 과연 네게는 꽃말이란 말이 가당하구나. 내, 자그마한, 행운 꽃.

- 산하

슬스팀과 에세이를 쓰고 서로 피드백하며 함께 성장할 구독자 님을 찾아요. 슬스 라이터스 클럽(SWC)은 정기적인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글을 쓰는 모임이에요. (클라이밍도!) 클라이밍 난이도나 글쓰기 경험 여부는 전-혀 상관없어요. 클라이밍이 처음이어도, 글쓰기에 자신이 없어도 누구나 신청할 수 있어요. 잘하기보다 꾸준히 하고 성장해나가는 데 의미를 두는 모임이에요. 또한 SWC에서 쓴 글은 슬스레터에 소개해 드려요.

대상: 슬스레터 구독자 누구나
신청 기간: 2024.09.06(금) ~ 2024.09.22(일)
참여 안내: 2024.09.27(금) 슬스레터 및 개별 안내
* 신청 인원이 많을 경우 원활한 모임 진행을 위해 무작위로 일부만 추첨해요.
활동 기간: 2024.10.01(화) ~ 2024.12.31(화)
* 정기 오프라인 모임은 월 1회, 주로 토요일에 진행돼요.
신청 방법: 아래 버튼을 눌러 신청서를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