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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연휴가 끝났습니다. 구독자 님 마음이 헛헛할 것 같아 슬스레터를 보내드려요. 슬스레터를 읽을 때 만큼은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기를 바라요.
사실 이번 주는 3일만 출근하면 다시 주말이라 부담이 크지는 않은데요. 연휴 없는 다음주가 살짝 무섭긴 해요. 그럼에도 놀 생각뿐인 슬스팀은 벌써 주말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비 예보가 있긴 하지만 단팥은 친구들과 산에 다녀오기로 했어요. (제발 비 안 오기를!) 운동의 ㅇ에도 관심이 없는 친구와의 약속이라 어떤 산에 가야 할지 고민이 많아요. 지금까지 후보로 언급된 곳은 인왕산, 아차산, 청계산 정도예요. 근력이 제로에 가까운 초보자가 등산화 없이도 올라갈 수 있어야 하고, 이 기회에 친구가 산 오르는 재미를 알게 되면 좋겠어요. 그런 산 어디 없을까요?
구독자 님은 어떤 산에 가보셨나요? 혹시 수도권에서 초보자에게 추천해 줄 만한 산이 있다면 아래 버튼을 눌러 공유해 주세요! 인근 맛집이나 초보자를 위한 등산 꿀팁도 함께 적어 주셔도 좋아요.
오늘 준비한 레터는요! 1️⃣ 벽 타는 사람들: 산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윤성중 『등산 시렁』 작가를 시느가 만나고 왔어요. 2️⃣ 슬스 Pick!: 단팥이 선정한 오늘의 콘텐츠! 함께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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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타는 기자, 책 쓰는 등반가, 그림 그리는 작가 윤성중을 만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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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따스해진 만큼 클라이머의 몸과 마음도 분주해지죠. 모락산을 갈까, 여행 겸 진안으로 떠날까, 하면서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거기 어프로치 어땠더라?’ 하며 조금이라도 등산을 덜 하는 곳을 찾는 클라이머 있나요? (나야, 나)
바위를 경험하기 위해선 산행이 필수인데 몸은 왜 이렇게 천근만근일까요? 이때 비슷한 고민을 다룬 책을 만났습니다. 바로 윤성중 《월간산》 기자가 쓴 『등산 시렁』입니다. 클라이밍은 좋지만, 등산은 싫어⋯ 하는 마음이 든다면? 작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등산 시렁 산악회’에 가입하고 싶어질지도요! 천천히 가도 된다, 정상까지 오르지 않아도 된다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윤성중 작가와 함께 산행을 시작해 볼까요?
*이 인터뷰는 실제 서울의 실내 클라이밍장에서 진행됐으나 등산하며 대화한 콘셉트로 재구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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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5일, 전라북도 장수에서 열린 ‘장수트레일레이스’ 경기에 참여한 윤성중 작가. 비가 내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CP5로 향하던 중 찍혔다. 사진=예티 작가(@run_and_shot_yet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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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입구: 가볍게 몸풀기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산의 매력
작가님, 반갑습니다! 이야기 나누며 올라갈까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이우성 시인이 써준 소개를 좀 읽어도 될까요? (책을 펼치며) 조용히 다가와 엉뚱한 계획을 말하는 사람. 씨익 웃으며 그걸 정말로 하는 사람. 오래 계속하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이상하게 그 그림을 좋아하게 만드는 사람. 기교 말고 선함을 품은 사람. 누구처럼 멋진 글은 쓸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 사실은 누구보다 아름다운 글을 쓰는 사람. 평범한, 너무나 평범해서 그의 눈부신 모든 것이 엉뚱하게 보이는 사람. 그래서 마침내 자신의 계획을 사랑하게 하는 사람. 그리고 기자. 《월간산》에 다니는 사람. 그렇다고 하네요, 하하.
책의 첫 부분을 읽으면서 좀 놀랐어요. ‘일할 때만 산에 가니 사실은 산을 안 좋아하나’라고 쓰여 있는 것과는 달리, 산과 깊이 관련 있던데요!
아무래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죠. 아버지가 유명한 산악회 출신이셔서 제가 어릴 때부터 이 산 저 산에 데려가셨어요. 늦잠 자고 싶고 힘들긴 했어도 곧잘 따라다녔던 거 같아요. 자라서도 산을 계속 다녔고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산악부 활동을 했고, 여러 등산학교 교육도 수료했고요. 그때 당시 내가 산을 무척 좋아했나? 하면 또 갸웃하는 게, 고등학교 때는 어떤 무리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서 모임 활동을 찾았거든요. 근데 또 남들이 잘 안 하는 걸 하고 싶고. 도서부, 사진부 등은 인기가 많아 가입하기 쉽지 않았고요. 희소성이 있으면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데가 어디일까? 찾았는데 그게 또 산악부였네요.
산을 향한 마음이 긴가민가해도 작가님과 잘 맞고 마음 가는 활동이라 계속 산을 다닌 것 아닐까요? 등산의 어떤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을까요?
음… 풍경? 산의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잠깐 신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아요. 모든 곳을 구석구석 살피는 느낌. 세상이 이렇구나, 감탄하고. 5분~10분 정도 그러한 기분을 만끽하는 거예요. 그 잠깐의 순간에 어떠한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책에도 나오지만, ‘나는 왜 일할 때만 산에 가나? 실은 산을 안 좋아하는 건가?’ 하는 고민이 좀 있었는데요. 『등산 시렁』을 연재하며 (고민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됐어요. 나는 남들이 안 가본 산에 갈 기회가 상당히 많구나, 산행하며 느끼는 여러 감정을 일하면서도 느낄 수 있고, 그래서 직업적 만족도가 높구나. 어, 그럼 나는 산을 좋아하는구나. 일할 때만 산에 간다고 해서 안 좋아하는 건 아닌 거네.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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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 건가? 하지만 나는 일을 하지 않을 때 산에 가진 않는데?” “그건 쉬고 싶은 거야. 일하면서 산에 가는데, 뭣하러 쉴 때 또 산에 가. 넌 네가 기획한 걸 산에서 실현시키는 걸 즐겨. 기획한 걸 실현시키기 위해선 사람들이 필요하잖아. 혼자서는 못하잖아. 그러니깐 혼자선 산에 안 가는 거지. 그리고 산과 관련된 너의 아이디어는 재밌어. 산과 산 타는 것에 관한 흥미 없이, 좋아하는 마음 없이 그런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 있을까?”
양수열 기자는 나를 정확하게 진단했다. 나는 《월간산》에서 일하는 걸 즐긴다. 누가 봐도 분명 산꾼인 것이다. 마음속을 꽉 막고 있던 어떤 덩어리가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사진기자와의 대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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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입: 천천히 텐션 올리기 어느날 산이 직업이 됐다
산악부 활동에 등산학교도 수료했는데, 클라이밍 관련 일이 아니라 ‘잡지 기자’를 선택한 계기가 궁금해요.
처음엔 사진기자를 하고 싶었어요. 제 전공이 사진이거든요. 졸업할 때쯤 다들 하듯이 진로를 고민했죠. 대학 졸업하고 뭐하지? 하면서요. 그래, 나는 등반을 좋아하고 산도 좋아하니까 아웃도어 쪽 잡지로 가보자! 북한산의 인수봉을 찍어서 전시한 적도 있고요. 북한산 아래에 등산 장비 판매점이 많은데 그중 한 사장님이 ‘열심히 하네’ 하며 저를 알아보실 정도로 산행도 사진도 정말 열심히 했어요. 학부생 때 공부하며 찍은 사진, 전시 사진 등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잡지사에 사진기자 시켜주십쇼, 하고 제출했는데 떨어졌어요.
앗,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재도전하신 건가요?
그 후 1년 뒤에 다시 잡지를 보니 이번엔 편집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더라고요. 자격 요건 중 우대사항이 ‘산악부 출신 우대’. 이 정도면 나 할 수 있겠다! 바로 이력서를 써서 사무실로 찾아갔어요. 서류만 내고 올 생각으로 정말 편하게 슬리퍼를 신고 갔는데 사장님이 그날 거기 있었던 거예요. 바로 면접을 보고 기사 작성과 관련된 과제를 제출했는데 합격이라고 하더라고요. 2009년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이전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서 막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는데, 다행이었죠. 아, 선배들한테 슬리퍼 신고 면접 본 놈이라는 별명이 붙긴 했지만요. 하하.
글을 원래도 잘 쓰셨나 봐요.
에이, 아녜요. 일하면서, 배우면서 점점 성장한 거죠. 글 잘 쓴다는 얘기를 5년 전에야 처음 들었어요. 잘 쓴다고 처음으로 얘기해준 친구가 이우성 시인이에요. 그동안은 일이니까 기사 쓰고 글 쓰지,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시인한테 들으니까 감회가 참 새롭고 남달랐어요. 어떤 내용을 썼는지 지금 찾아볼 수 없어서 아쉽긴 한데, 그 글을 계기로 흔히 생각하는 기사 형식에서 조금 벗어나게 됐죠. 기사니까 주관적 감상을 덜어야 한다, 인터뷰나 르포도 최대한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써 왔는데 그걸 꼭 안 지켜도 괜찮구나, 그런 용기가 생겼다고 할까요.
아웃도어 잡지 기자의 하루는 어떤가요?
잡지를 만드는 과정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요. ‘기획 - 취재 - 마감’ 세 과정이 있는데요. 먼저 이전 달 호를 완성하면 좀 쉬죠. 출근도 9시 30분, 10시. 유동적으로 해요. 그러면서 이번엔 어딜 갈까 찾고, 목록을 만들어요. 사무실에 모여서는 회의하면서 서로의 목록을 나눠요. 함께 갈 산, 산행할 친구, 장비를 빌려줄 업체를 찾고, 사진기자를 섭외하고, 방문할 산의 코스가 어떤지 정보를 계속 찾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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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구눙 물루 국립공원으로 출장 간 작가. 배를 타고 1시간여 갔다가, 밀림을 1시간 30분 통과해야 하는 여정으로 잔뜩 지쳤다고 한다.
ⓒ윤성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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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은요?
이렇게 모든 기획이 정해지면 이다음이 취재 기간이에요. 보통 저는 산에 가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 묵으면서 취재해요. 새벽부터 산행 준비하고, 산 정상까지 가서 텐트 치고, 다음날에 하산하는 식으로 제가 기획한 걸 만들어 가죠.
마감 기간이 되면 그때의 경험과 재료를 갖고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키보드를 계~속 두드리죠. 일주일을 그렇게 보내면, 잡지가 완성됩니다.
최근 쓴 기사 중에서 만족한 기사를 꼽아본다면요?
2월 호에 나온 BPL(Backpacking Light) VS BPH(Backpacking Heavy) 편이에요. 지면 레이아웃을 기획하면서 촬영한 사진에 그림을 한번 그려볼까? 하고 시안을 만들어 디자이너한테 넘겼죠. 그런데 하나도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반영됐어요. 스스로 완벽한 작품처럼 여기고 있었는데 그게 전문가가 보기에도 괜찮다고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무척 좋더라고요. 이후로도 레이아웃에 제 그림을 넣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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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함께 실린 작가의 그림. 위트가 넘치는 그림으로 지면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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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등산 전문 잡지여서 대부분 구독자가 등산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도 작가님은 정상까지 가지 않아도 좋다고 하고, 야트막한 산을 오르는 것도 등산이라고 말하고, 산에서 명상을 시도하고. 다양한 산행 방법을 얘기하더라고요.
잡지의 논조가 있기도 하고 구독자를 염두에 둬서 난도가 높은 등반, 높고 험준해 산행이 어려운 산, 그런 곳에서 도전한 사람들의 모험담을 다루는 콘텐츠가 주를 이루긴 하죠. 소위 말하는 알피니즘*, 알피니스트** 관련 글이 매우 많아요. 근데 저는 기존 등산 잡지의 문법과는 다른 형태의 글도 쓰고 싶었어요. 어딘가 초를 치고 싶었달까? 어차피 산에 놀러 가는 건데 그걸 굳이 엄숙하게 다룰 필요가 있을까요? 꼭 어떤 철학이 있어야만 산에 갈 수 있나요? 산을 타는 얘기 말고도 길을 가다 잠시 딴 길로 새서 그림도 그리고, 서로 나누는 대화도 싣고. 이런 소소한 내용을 더욱 다루고 싶었어요.
*알피니즘 : 모든 계절에 걸쳐 높은 산의 바위나 얼음 같은 지형을 통해 벽을 오르거나 정상에 오르는 예술적 행위 **알피니스트 : 알피니즘을 실천하기 위해 높고 험난한 산을 대상으로 모험적인 도전을 하는 등산가를 의미
작가님도 산악부 출신인데, 알피니즘 추구하던 때가 아예 없으셨나요?
아뇨. 저도 엄청나게 외치고 다녔어요. ‘야, 니들이 알피니즘을 알어?’ 이러면서. 하하!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무작정 산만 탔다면 이 책 못 썼죠. 학부생 때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다양한 문화와 사람을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러면서 여러 관점으로 바라보는 감각이 길러졌어요. 졸업 후에는 아웃도어 활동 외에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 등산 잡지 말고도 광고 관련 직무라든지, 패션 마케팅 등 다른 업무 경험도 했고요. 그때의 경험들이 전환점을 만들어 주지 않았나, 생각해요. 돌고 돌아 다시 등산으로 오긴 했는데⋯.
앞으로 진행하고 싶은 기획이 있다면요?
일본에 《산과 계곡(山と溪谷)》이라는 100년 된 잡지사가 있어요. 성사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저희 기자와 서로 맞교환을 2년 정도 해보는 거예요. 우리 둘 다 등산 전문 잡지고, 성질이 꽤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교환 기자로 활동하면 각 회사에 도움 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언론사마다 연수 프로그램이 있는데, 일종의 해외 연수 프로그램처럼 우리도 그렇게 진행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중턱: 풍경 보며 잠시 숨 돌리기 산을 가볍게 경험해 볼 수 있는 책
이제 책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등산 시렁』을 쓰면서 마음에 가장 남은 편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대학교 동아리 박람회에 가다」요. 홍익대학교 재학생인 척하며 산악부 면접을 본 경험을 적었죠. 그때 산악부 학생들이 저를 같은 학생 신분으로 생각해 준 게 정말, 정말 고마웠어요. 또 옛날 생각도 났고요. 20대 때 제가 산악부 면접을 봤던 그 당시로 돌아간 것처럼 어떻게 말해야 하나, 뭘 물어볼까? 생각하고. 무척 떨리고 설렜어요. 사무실로 돌아와 면접 현장과 그 감정을 쓰는데 야,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로 즐겁게 쭉 써 내려간 기사예요. 인터넷에 공개하고선 ‘학생들한테 뭐 하는 짓인가?’ 이런 악플이 좀 달리긴 했지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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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산악부 면접 오늘 6시 20분에 시간 괜찮을까요? 학생회관으로 오시면 됩니다.” 나는 가겠다고 답장했다. 기다리면서 내내 초조했다. 손발이 가만히 있질 못했다. 면접 보기 30분 전, 나는 사무실에서 나와 택시를 탔다. 쏜살같이 홍대 정문으로 갔다. 떨렸다. 뛰지 않았는데도 숨이 찼다. 나는 계속 크게 숨을 내쉬고 뱉었다. 오후 6시 10분. 학생회관 산악부실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큰 테이블 너머에 두 명의 학생이 앉아 있었다. 나는 쭈뼛대며 그들에게 말했다. “저, 면접 보러 왔는데요.”
「대학교 동아리 박람회에 가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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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산행, 트레일러닝 등 산에서의 활동을 즐기는 모습은 많이 접했는데, 볼더링은 안 하는지 궁금해요!
옛날엔 다 했어요. 산악부 활동을 하다 보니 스포츠클라이밍보다는 멀티 피치 등반을 더 많이 했죠. 아, 잡지사 《사람과산》 재직할 때 자연 볼더링을 처음 접했네요. 이후로 실내외 볼더링도 했고, 취재할 때 암장에 가면 형들이 잘한다며 칭찬도 꽤 해줬어요. 근데 지금은 등산과 트레일러닝, 그림 그리기 정도만 해요. 약 9년 전에 한 멀티 피치 등반이 마지막인 것 같아요. 장비도 수시로 관리해야 하고, 등반을 함께할 파트너도 구해야 하고, 그 파트너와 시간이 맞아야 하고, 내 컨디션도 따라줘야 하고, 결혼도 했고요. 이런저런 여건이 맞지 않을 때가 점점 많아져서 결국 다른 사람들한테 장비를 다 주고 정리했네요.
취재하느라 매일 바쁠 것 같은데, 그림, 러닝, 사이클 등 취미가 많잖아요. 주로 언제 하나요?
그림은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그려요. 기사를 쓰다가 어딘가 막히면 노트에 낙서하고, 글 말고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은 장면이 있다 싶으면 그리고, 마감하다가 딴짓하고 싶을 때 그리고. 러닝, 사이클은 휴무일이나 주말에 별다른 일정이 없고 시간이 넉넉하다 하면 밖으로 나가서 뛰고 자전거 타고 해요. 트레일러닝 관련 취재를 진행해야 한다 하면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훈련하고요. 등반을 열심히 했을 때는 기사 마감하자마자 암장에 가서 문 닫을 때까지 운동하고, 친한 센터장님한테 양해를 구해서 하룻밤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또 운동하고 출근하고. 그렇게 운동에 푹 빠진 때도 있었죠. 젊었네요. (웃음)
제목은 『등산 시렁』이지만, 읽어 나갈수록 점점 작가님이 그려낸 산의 모습을 실제로 접하고 싶더라고요. 등산 시렁 산악회에 가입하고 싶은 독자가 꽤 생길 것 같은데. 추천하는 등산 코스가 있을까요?
어느 하나를 콕 집는 것보다는. 본인의 집과 가까운 산부터 오르면 어떨까 해요. 멀리 안 가니까 부담 없고 좋잖아요. 꼭 산이 아니더라도 둘레길도 좋고요, 안산 둘레길 같은 코스요. 저도 집과 가장 가까운 산을 자주 올라요. 근처에 불암산과 수락산이 있는데 많이 오갔다 보니 길을 외우다시피 해요. 또 서울둘레길도 코스가 정말 많아서 개중에서 종종 다니고요. 등산을 어렵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좋겠어요. 자연을 거닐면서 여러 감정을 느낀다면 그게 바로 하이킹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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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거는 저한테 좀 큰데요,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거. 왜, 그런 거 있잖아요. 하면 할 수 있다는 걸 아는데, 제대로 못할 거라는 생각이 커서 섣불리 덤비지 못하는 일 많잖아요. 그런데 오늘 그중에 어떤 걸 해냈어요. 낮은 산이어도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게 저한텐 되게 큰 의미네요.”
「커다란 컴퓨터에 새로운 경험 입력하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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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해방감 만끽하기 기자, 작가 그리고 화가, 다음으로 나아가며
와, 드디어 도착! 이렇게 올라오니 또 다른 풍경처럼 다가와요. 작가님처럼 그림을 그릴 줄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요. 참, 책의 삽화도 직접 그렸는데,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학생 때부터 그리기 시작했어요. (와, 무려 20년 전이네요!) 사진을 공부하면서 뭔가 사진만으로는 작품을 만들기엔 조금 부족한 느낌이더라고요. 그림을 그려볼까? 싶었어요. 그래서 도서관에 가 저처럼 그림을 배운 적 없는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찾아봤죠. 가장 기억에 남는 작가는 레이몬드 페티본(Raymond Pettibon)이에요. 검은색 잉크로 마구 그린 듯한 분위기의 작품이 많죠. 여기에 중얼대는 듯한 글씨도 들어 있고요. 이 작가를 보고 많이 따라 했어요. 점점 그림을 향한 애정이 생겨나고, 더욱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심에 시각디자인과 수업을 수강했어요. 뜻밖에도 좋은 결과까지 얻게 됐죠(A0라며 강조했다). 이때 돈을 모아 유학을 갈까? 그냥 취업을 할까? 엄청 고민한 시기기도 해요.
앞서 포트폴리오를 들고 잡지사에 찾아갔다고 했잖아요? 그곳 말고도 학창 시절에 그린 그림을 모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문구 디자인 회사에 지원했는데, 운 좋게 합격했어요. 디자인 회사 특성이 작용해 좋아하는 그림을 실컷 그릴 수 있었죠. 그렇게 지금까지 그림을 그려오고 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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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시렁』을 연재하며 그린 그림들. 책에서 작가의 그림을 더 확인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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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와 산에서 그림을 그리며 ‘그림이 자신을 치유하는 용도’가 됐으면 좋겠다고 한 부분이 있어요. 작가님은 어떤 부분을 치유받으셨을까요?
어떤 걸 치유받겠어! 라고 생각하고 그리는 건 아니고⋯ 시간만 나면 틈틈이 혼자 끄적끄적 그리거든요. 사실 제 그림은 전문가처럼 스케치에 공을 들이고, 이후 레이어를 얹어서 또 그리는 식이 아니라 레이어가 많지도 않고 선도 삐뚤빼뚤하고 그래요. 근데 삐뚤빼뚤한데 제 마음에 꼭 드는 그림이 나와요. 어느 날은 정말 잘 그리기도 하고요. 그렇게 완성한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만족감이 차오르고 위안이 되고 그렇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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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 내가 그린 그림에 위로받을 때가 있다. ‘와, 이거 정말 내가 그린 거야? 내가 이렇게 잘 그렸다고?’라면서. 가끔은 그림들이 꼭 내가 낳은 자식 같을 때가 있다. 그것을 휴대전화에 저장했다가 몇 번이고 꺼내 바라본 적 있다. (⋯) 하지만 그들이 못 그렸다고 했어도 나는 기분 좋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낳은 자식들의 괴상망측함을 좋아하니까!
「등산 시렁 사생대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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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시노 미술대학에 입학해 산악부에 가입하기’ 꿈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꿈, 아직도 여전한가요?
무사시노 미술대학과 함께, 학부생 때 영국에 일러스트레이터학과가 특히 유명한 학교로 유학 갈 생각도 했죠. 사회생활하고 돈 모아서 가보자! 했는데 지금까지 일하고 있네요. 하하! 아무래도 지금은 좀 희석된 감이 있죠. 대신! 이제는 개인 작업을 해봐야겠다. 캔버스에 한번 내 그림을 그려봐야 하지 않겠나 생각해요. 언젠가 개인 전시회도 꼭 열고 싶어요.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요. 올해 계획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글쎄요. 계속 일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지 않을까요? 여력이 된다면 큰 그림을 몇 점 그리고 싶어요.
마지막 질문으로 슬스레터 공식 질문을 드리는데, 이번엔 살짝 변형하겠습니다. 작가님에게 ‘등산’이란?
아, 이것 참, 어렵네요. 지긋지긋한 밥벌이의 수단이지만, 역시 또 좋죠. 등산 시렁? 등산 좋아! (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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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그림으로 살펴보는 ‘등산 좋아’의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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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인터뷰는 ‘산을 오르며 나눈 이야기’라는 콘셉트로 작성했다고 앞서 말씀드렸죠. 어떤 산을 오른다는 기분으로 썼냐면요! 바로 북한산 백운대입니다. 혹시 아직 한 번도 북한산에 가본 적 없다면 이 영상을 참고해 보세요. 등산 전 준비 운동부터 코스 소개까지 알차게 정리돼 있답니다. 영상 보니 언제 한 번 백운대 가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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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5. 07. 구독자 님의 활기찬 하루를 바라며 65번째 편지 From. 슬로우스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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