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님,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잘 지내셨나요? 슬스레터가 <격월간 슬스>라는 이름으로 시즌 2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이전과는 어떤 점이 달라지는지 간단히 소개해 드릴게요!

첫째, 두 달에 한 번씩 보내요.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발행주기를 2주에서 두 달로 조정했습니다. 그동안 구독자 님을 비롯한 많은 분이 “인터뷰 콘텐츠를 더 보고 싶다”고 피드백해 주시곤 했는데요. 좋은 인터뷰 콘텐츠를 만드는 데 2주는 너무 짧더라고요. 무엇보다 팀원 모두 본업과 레터 마감을 병행하기 어려웠죠. 더 양질의 콘텐츠를 보내드리기 위함이니, 구독자 님의 너른 양해 부탁드려요.

둘째, 클라이밍만 이야기하지 않아요.

시즌 1에서는 오직 클라이밍에만 초점을 맞춰 메일을 보냈는데요. 시즌 2부터는 다양한 운동을 하며 성장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합니다. 실제로 여러 클라이머를 만나보니 클라이밍만 하는 분은 없었어요. 달리기, 등산, 요가, 크로스핏 등 많은 운동을 병행했죠. 그런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없는 점이 아쉬웠어요. 또한 슬스팀도 저마다 여러 운동에 도전하며 성장하는 중인데요. 운동을 통해 성장하는,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시즌 2로 새출발하는 <격월간 슬스>도 앞으로 많이 사랑해 주세요!

2025년 12월 첫날 보내드리는 <격월간 슬스>는 ‘Work’를 주제로 준비했습니다. Work는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일’이라는 뜻뿐 아니라, 때로는 ‘작품’이나 ‘노력’으로 쓰이기도 하고요. out과 함께 사용하면 ‘운동하다’라는 의미로 활용할 수도 있죠. 구독자 님에게 Work는 어떤 의미인가요?

10월 13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웹드라마 <루트파인딩>이 세상에 등장했다. 국내 최초로 클라이밍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다. 클라이밍 센터를 운영하는 동하, 루트 세터로 일하는 태경, 직장에서 잘린 뒤 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안. 드라마는 같은 암장에서 만난 세 사람이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드라마를 만든 제작팀 각자의 사정도 등장인물과 비슷하다. 이야기를 쓴 작가는 암장의 홍보팀으로, 감독은 행사 촬영 스태프로, 배우는 직원으로 일하다 인연을 맺었다. 클라이밍이 작중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작가, 감독, 배우에게는 하나의 작업물을 완성하게끔 하는 동기가 된다. 드라마 캐릭터와 제작진 모두에게 클라이밍은 어떻게 일과 삶으로 연결됐을까. 드라마를 제작한 어프로치 스튜디오 팀을 직접 만나 그 과정을 들었다.

• 웹드라마 <루트파인딩> 작가
• 클라이밍 센터 ‘담장’ 홍보팀
• (전) 드라마 제작사 기획 PD
• 드라마 작가의 꿈을 키우던 중 경영 악화로 퇴사하고, 제주에서 한 달 살이를 하다가 '담장' 대표를 만나 홍보팀으로 스카웃됐다.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드라마 속 인물처럼, 여러분 또한 길을 직접 만들어 간다고 생각했어요. 그 과정이 두렵진 않았나요?

재원: 팀원 모두 본업이 있는지라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계획한 분량을 모두 뽑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촬영을 진행하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늘 생겼고요. 하지만 이 사건사고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힘들게 다가오기보다 즐거웠어요. 그동안 영화를 찍을 때는 혼자 스토리를 만든 뒤 도와줄 스태프를 다 불러 모아서 촬영만 같이하는 식이었는데 이번엔 함께 작업했잖아요. 현장에서 인물의 감정이 화면에 어떻게 비춰 보일지 제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사랑 배우가 질문하면 그걸 도련 작가와 또 함께 생각하고. 혼자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이번 작업을 진행하며 크게 다가왔어요. 해결하는 과정 또한 우리의 루트파인딩처럼 느껴졌어요.

도련: 대본을 쓰고서 제일 먼저 담장 사장님한테 가서 ‘저 이런 거 하고 싶어요, 될까요?’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오케이, 재밌겠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사장님을 비롯해 팀원들이나 다른 친구에게 ‘같이 할래?’라고 물어봤을 때 전부 ‘재밌겠다!’하며 응해줬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재미에서 출발한 일의 추진력은 정말 대단하구나. 만약 처음부터 수익성이나 흥행만을 목표로 했다면, 아마 모든 과정이 버겁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 클라이밍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많은 도움으로 완성되는 것을 보며 두려운 마음보다는 매 순간 즐겁고 감사한 마음뿐이었어요.

사랑: 전혀 겁나진 않았어요. 오히려 도련 작가, 재원 감독이 있어 든든했고, 저 또한 든든한 팀원이자 배우가 되려고 노력했죠. 프로젝트 후반부로 갈수록 우리의 손발이 더더욱 맞아서 정말 재밌었어요. 물론 끝을 보기까지 어려움은 많았죠. 그 과정에서 팀원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어요. 도와달라고 손 내밀 때 흔쾌히 잡아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정말 끝까지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모르니까 용감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웃음) 다시 작업에 들어가게 되면 큰 두려움과 떨림을 안고 시작할 것 같아요.

갈등과 해소 : 머리를 맞대어 고민하면 완등이 보인다

지안은 일을 시작하며 클라이밍을 알게 됐는데, 사랑 님은 암장 직원이었고 8년 차 클라이머예요. 연기하면서 어떤 고충은 없었나요?

사랑: 고충까지는 아니지만, 고민은 있었어요. 운동을 처음 하는 사람처럼 안 보인다는 피드백을 받았거든요. 올챙이 때의 시절을 완전히 잊어버린 거죠. 역할에 몰입하고자 클라이밍을 안 해본 스태프분의 모습을 베끼며 초보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원래도 근육이 별로 없었지만, 그나마 있는 것도 빼보려고 운동을 쉬었고요.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는지 지금은 오히려 다시 운동하기가 어려운 지경이 됐네요. (웃음)

동하와 태경이 세팅 스타일로 대립하는 장면도 나와요. 현장에서도 각자의 의견이 충돌한 적이 있을까요?

도련: 물론 서로의 의견이 달랐던 적은 있지만, 대체로 이해하고 수용하며 맞춰갔어요. 보통의 드라마 촬영 현장이라면 작가는 현장에 잘 없어요. 감독에게 대부분의 연출을 맡기는데, 저희는 손이 부족하잖아요? 직접 가서 소품을 챙기거나 구도에 나오면 안 되는 것들을 정리하며 진행하다 보면 서로 합의하지 못한 부분이 종종 드러나곤 했어요. 정해진 분량만큼 촬영하지 못할 때도 있고요. 재원 감독이 현장을 감독하고 지휘하는 역할인데 오히려 제게 와서 ‘이렇게 진행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아요?’라고 계속 확인했어요. 제가 놓친 부분까지 챙겨줘서 고마웠던 일이 정말 많아요.

현장에서 의견을 조율했던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재원: 사실 인물들의 서사를 대거 수정했어요. 드라마 업로드 일자를 정하고 제작을 시작한 거라 일정에 맞춰 완성본이 무조건 나와야 했어요. 각자의 일정이나 공간 대여 등의 문제로 촬영을 끝마치지 못했다고 업로드를 미룰 순 없었고요. 주어진 환경에 맞춰 완성해 보자, 하면서 과감히 삭제하고 도련 작가와 계속 상의하면서 지금의 이야기를 완성했어요. 잘 마무리하긴 했지만 여전히 조금 아쉬운 마음은 있어요.

수정 전의 이야기는 어떤 내용이었는지 살짝 알려줄 수 있나요?

도련: 센터 사장인 동하의 서사가 수정됐어요. 그의 전 여자친구도 등장할 계획이었는데 지안과 태경의 서사에 집중하기 위해 없앴죠. 동하의 전 여자친구가 지안의 친구거든요. 그 캐릭터를 통해 지안이 왜 일에 파묻히게 됐는지 이유가 나오면서 지안을 더욱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요소였어요. 클라이밍을 배우며 삶의 균형을 찾아가면서도 일에 집착하는 성향을 못 버려서 다시 태경과 갈등을 빚고. 그런 내용이 더 있었어요.

시즌 2 만드셔야겠는데요?

도련: 저희도 정말 그러고 싶어요. 근데 다들 본업도 있고 제작비 문제도 있어서⋯ 또 같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웃음) 

생활 패턴이 바뀌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때로는 지치기도 했을 것 같아요.

재원: 영상을 만들고 보여드리는 것 자체가 어쩔 수 없이 지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품이 드는 일이니까요. 촬영하며 많은 사건사고도 발생하고, 한 인물이 통으로 사라지고, 비용이나 시간이 부족한 문제는 항상 있었고요. 해결하는 과정마다 에너지가 소진되긴 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또 팀원들과 함께여서 끝까지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도련: 솔직히 하루에 열두 번씩 도망가고 싶었어요. (웃음) ‘분명 재미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일이 커졌지?’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요. 프로젝트를 맡다 보니 제 이름 뒤에 ‘대표’, ‘작가’ 같은 무거운 호칭이 붙기 시작했는데, 그게 과연 나에게 어울리는지 스스로 의심이 들 때도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습관적으로 버티기만 했어요. 그런데 드라마에서 제가 전하고자 하는 말은 그게 아니거든요. 낙법 에피소드에서 “버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잘 떨어지는 것”이라는 대사가 나와요. 그 말을 쓰면서도, 막상 제 일에서는 제대로 적용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어느 순간, ‘아, 나도 이 프로젝트에서 잘 떨어지는 법을 배워야 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드라마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매일 벽에 부딪히고, 떨어지는 심정이었는데요. 깨닫고서는 바닥을 똑바로 직면하면서, 필요할 땐 가볍게 뛰어내리는 연습을 했어요. 무엇보다도, 제가 떨어질 때 다치지 않게 아래에서 스팟을 봐주는 팀원들이 있었어요. 서로 북돋으며 한 발씩 나아갔기 때문에 결국 끝까지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 저는 현장 상황상 밤샘 촬영이 잦아 수면 패턴이 무너졌는데… 요령이 없어서 극복은 못하고 그대로 겪어내고 버텼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현장 분위기가 무척 좋았고 무엇보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촬영장만 가면 기운이 났어요.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서 촬영장으로 얼른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루트파인딩>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았으면 하는지 관전 포인트가 있을까요?

도련: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ʻ균형’이에요. 일에 매몰돼 있던 지안의 삶이 클라이밍을 배우고 사람을 만나며 여유를 찾고 비로소 균형을 이루게 돼요. 타협을 모르던 태경은 지안을 만나며 타인을 수용하는 태도를 배우죠. 클라이밍에서 균형을 잡는 기본은 ‘삼지점’이잖아요. ‘그렇다면 인생의 삼지점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이야기가 시작됐어요. 제가 찾은 삼지점은 일과 사랑과 낭만인데, 시청자 여러분의 삼지점은 무엇일지 궁금해요.

재원: 인물의 감정이 강하게 드러나는 장면에선 가까이 다가가서 촬영해 보고, 인물들의 관계가 어떻게 흐를지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하게끔 하고 싶다면 멀리서 구도를 잡아보고. 여러 시도를 했어요. 특히 의도가 들어간 건 태경과 동하와 대립하는 장면이에요. 가치관이 대립하는 부분이라 부딪히는 게 잘 드러나도록 앵글을 잡아봤는데 어떠셨을지 싶네요. 이렇게 가까이서 또 멀리서 드러나는 인물들을 통해 삶을 잘 들여다보자,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또 우리만의 길을 찾으면 된다.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를 통해 본인이 지닌 고민을 또 한 번 들여다본다면 저희의 의도가 잘 나타났구나, 하고 기쁠 것 같습니다.

직장 생활 8년 차에 색다른 경험을 했다. 이직 이틀 차부터 야근하게 된 것. 첫 출근날 빼고는 전부 9시 넘어 집에 들어갔다. 전달받은 출근 시간은 10 to 7인데 어째서인지 9 to 9이 일반적이었다. 야근이 일상인 팀 문화가 처음이라 낯설었다. 보통 한 달 정도는 적응기를 두지 않나? 원래 직장인은 야근을 싫어하지 않나? 이들이 늦은 시간까지 일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궁금증에 팀원들을 열심히 관찰했다.

우선, 채용할 때부터 열정 넘치고 끝없는 성장에 대한 욕망을 가진 사람을 뽑는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도 면접에서 성장이라든지, 일의 의미, 내가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과 추진력 등에 대해서 많이 언급했다. (열정 대비 체력이 달린다는 말은 생략했다.) 그리고 몇 차례 온보딩 교육을 들어보니 회사가 가진 비전에 대해 내부 공유를 무척 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200명이 넘는 인원이 동기화가 완벽해서 업무를 빠르게 처리했을 때 더 좋은 성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러니 야근도 즐겁게 하는 듯했다. 함께 의미 있는 서비스(제품)를 만드느라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고민도 생겼다.

워라밸 어떻게 맞추지?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50:50으로 딱 떨어지는 밸런스를 유지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어떤 사람은 커리어와 직업적 성공이 중요해서 일에 더 무게를 두기도 하고, 어떤 이는 여가와 사적인 성장이 더 중요해 삶에 더 무게를 두기도 한다. 때로는 일이 곧 삶이 되기도 하고 삶이 곧 일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는 늘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저울추를 마주할 수밖에.

난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둘 것인가? 출근길 지하철에서 한창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문득 어프로치 스튜디오와 인터뷰했던 날이 떠올랐다.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 삼지점이 중요하다던 도련 작가와 재원 감독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그동안 밸런스의 기본인 삼지점을 왜 놓치고 있었을까. 워크, 라이프, 그 두 가지만으로 균형을 잡으려 하니 기울어지는 건 아니었나. 지하철에서 내려 역삼역 계단을 오르면서 생각했다. 워크, 라이프, 그리고 삼지점을 완성할 다른 하나를 찾아야겠다고.

그들의 웹드라마 <루트파인딩>에 나온 대사를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클라이밍처럼 인생에서도 균형을 잘 찾아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