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첫걸음마를 떼던 순간을 기억한다. 어른들은 모두 숨죽인 채로 눈을 반짝이며 아기의 작은 발에 집중했다. 균형을 잡기 위해 잔뜩 긴장한 발끝으로 아기는 있는 힘껏 세상을 밀어냈다. 마침내 한 발 두 발 떼었지만 금세 바닥에 철퍼덕 내려앉았다.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를 아기가 처음 걸은 그 순간은 당사자뿐 아니라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어른들에게도 모두 처음이었다. 부모로서, 조부모로서, 이모로서 처음 맞이하는 순간. 이렇게 때때로 타인의 처음이 나의 처음이자 기쁨이 되는 찰나가 있다.

클라이밍을 하다가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이는 그 일이 나에게 찾아왔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약 3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느 여름날, 이런저런 일로 우울해하는 S에게 함께 클라이밍을 하자며 꼬드겼다. 그런데 막상 약속 당일이 되자 무섭게 비가 내리쳤다. 그냥 취소할까 싶기도 했는데 '클라이밍을 같이 할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만들자'는 음흉한 마음과 '친구가 우울한데 기분 풀어주자'는 의협심이 동시에 발동해 도저히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에 만난 S는, 어쩌다 보니 그날 원데이 클래스 강사님과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게 됐다며 고민 아닌 고민을 털어놓았다. 당시 우리 둘 다 엄청 부스스한 느낌이었는데, 역시 될 사람은 어떻게 해도 되는구나.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S는 언제나 귀엽고 예뻤던 것 같다. 아무튼 S의 이야기는 뒤로 구르고 앞으로 구르며 들어도 그린라이트가 맞았다.

그러고 며칠 뒤에 다시 만난 S는 결국 사귀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앞으로의 꽃길은 두 사람이 만들어가야겠지만, 꽃길로 인도한 사람은 바로 나라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에 무척 뿌듯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쁜 일인데, 이제는 S가 그 사람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우리 모두 미처 알지 못했던 그날. S는 내가 처음으로 클라이밍을 같이 하자고 꼬드겼던 사람이었고,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함께 운동했으며, S는 처음으로 클라이밍을 접했고 또 그를 처음 만났다. 모두에게 처음이었던 그날, 그 순간. S의 처음은 우리 모두의 처음이자 기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