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막 시작됐을 무렵에 휴가 일정이 확정됐다. 마침 단팥 언니의 휴가 기간과도 맞아떨어져 그동안 얘기만 나누던 테마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우리의 휴가 테마는 클라이밍과 콘텐츠! 부산에 있는 클라이밍장 중 아직 가보지 못한 곳도 경험하고, 로컬 클라이머 인터뷰도 하고, 알찬 콘텐츠도 만들어보자고 야심 차게 떠났다. 여기에 창원 당일치기 일정까지 넣었는데, 클라이밍 에세이 『좋아하는 마음엔 실패가 없지』를 쓴 장참미 작가님이 운영하는 서점 '오누이 북앤샵'에 가기 위해서였다.

부산에서 창원으로 갈 때는 시외버스를 이용했다. 서부사상버스터미널에서 오가는 버스가 30분 간격으로 꽤 자주 있는 편이어서 자리도, 시간도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우리가 여행한 기간에는 현장 예매만 가능했다. 슬스팀의 루트처럼 부산에서 창원으로 이동한다면 버스 예매 방법을 미리 확인해 보면 좋겠다.

참미 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동네 클라이밍장인 '핫클라이밍'으로 향했다. 서점에서 창원대 방향으로 20분 정도 걸어가면 도착하는 곳이었다. 참미 님이 인근 맛집이라고 소개해 준 밀면집과는 더더욱 가까웠다. (식당 후기는 잠시 뒤에 나옵니다!) 서점에서도 밀면집에서도 가까워 여러모로 이곳 사람들은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길을 오르면서 도저히 암장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아파트 단지와 빌라가 다수 있어서 '이곳에 어떻게 클라이밍장이 있지?'라고 잠시 의아해했다. 그리고 센터 앞에 도착한 우리는 들어갈지 말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지하 1층인 암장 입구로 내려가는 계단이 엄청난 던전의 분위기를 자아냈던 것. 고오오- 하는 음산한 소리가 났던 것도 같다. 아니, 정말 들었다!

네이버 후기를 더 찾아보니 볼더링 위주보다는 지구력 위주인 듯했다. 게다가 함께 간 단팥 언니가 운동복을 두고 왔다는 것! 아, 어쩔 수 없다. 우리 다음에 또 오자! 우리 진짜 강해져서 오자! 하고 백 스텝으로 물러났다. (휴, 할렐루야!) 서울로 원정 오는 클라이머들이 어려운 문제도 쉽게 푸는 듯한 느낌이 든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온육수를 내어주시는데, 만두 주문해서 그 육수에 말아 먹으면 완전 만둣국이에요!"

"이 재밌는 걸, 왜 세상이 몰라주나!!!!"

클라이밍이 유행하기 전 클친자의 삶을 살던 내 마음은 이러했다. 클라이밍을 영업하기 위해 기회만 되면 '할 거 없음 클라이밍 해볼래?'를 흘리고 다녔더랬지. 하지만 클라이밍 하다 다쳐서 무릎 수술까지 한 사람의 말을 듣고 선뜻 가자고 하는 사람은 없었고 나 또한 클무새마냥 재밌다고 계속 이야기하기 머쓱하기도 했다.

지금은 대 클라이밍 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호선 라인 어디에나 암장이 생긴 것 같다. 주말이면 삼삼오오 스타터 수업을 듣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난 그 초보 무리 근처에서 몸 푸는 걸 은근히 즐겼다. 사실은 어렵지 않은 문제를 그럴싸한 고인물 무브로 풀어내면, 평소에는 쉽게 듣기 힘든 '작지만 다 들리는 감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지만 다 들리는 감탄'은 마법 주문 같은 거라서 안 풀리던 문제도 풀리게 만들고 없던 힘도 생긴다. 유사품은 '나이스'와 '가자'가 있는데 이 두 가지에는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부담감'이라는 사은품이 붙어있는 반면 작지만 다 들리는 감탄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오 나 좀 하나?'라는 생각을 심어주면서 그 힘을 발휘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건 감탄을 하는 사람에게도 효과가 적용되는데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동기 부여 +1이 생기는 것이다.

요즘도 가끔 친구들에게 클라이밍을 권유하는데 운동을 시작할 때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주는 설렘과, 그 설렘을 주었다는 만족감이 교차하는 순간이 즐겁기 때문이다. 혹시나 지금 클태기가 찾아왔다면 마약 같은 감탄 소리를 들려줄 친구를 찾아보는 치트 키를 사용해 보시길 추천한다.

- 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