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 홈짐 자랑 대회 To. 구독자 님
우리는 왜 자주 가는 암장 또는 제일 좋아하는 암장을 ‘홈짐’이라 부를까요? 왜 집이 아닌 공간에 집이라는 의미를 부여할까요? 저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유력한 이유는 사람 때문인 듯해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좋아서, 그곳에 가면 언제나 사람들이 반갑게 맞아줘서, 이 사람들을 만나면 편안하고 행복해서… 우리는 홈짐에 갈 때마다 집에 온 듯한 따뜻한 착각에 사로잡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봤어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SWC 멤버들이 ‘홈짐’을 떠올리며 쓴 글을 공유해요! 쌀쌀한 날씨에도 마음만은 따뜻하게 해주는 에세이 3편을 지금 바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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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클라이밍을 시작했던 건 2017년 봄, 귀신같이 망쳐버린 수강 신청 때문에 4시간 공강이 발생하면서부터였다. 당연히 처음에는 괜찮았지. 수다를 떨거나, 광안리로 산책하러 가거나, 하다못해 음악감상실에서 눈을 감고 누워있는 삶도 재밌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콜라 첫 입과 마지막 입의 감동이 다르다던 경제학 수업의 한계효용체감 법칙을 몸소 체험하면서, 그런 소소한 재미도 2주 만에 질려버린 것이다.
“이대로 한 학기를 보내다간 정신 나가서 휴학해 버리는 게 아닐까?” “기왕 시간 때울 거라면 좀 더 생산적인 걸 하는 게 어떨까?”
이따위로 한 학기 내내 살 순 없다. 빨리 할 것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동기와 내가 급하게 짱구를 굴려 할 것을 찾은 게 학교 앞 암장에서의 클라이밍이었다.
‘아 그럼 그 학교 앞 암장이 홈짐이겠구나?’ 하고 글을 마무리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때의 나는 클라이밍의 참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얇고 민첩한 내 동기와 달리 나는 묵직한 곰 같은 아이였기 때문에. 또 다시 흥미를 한 달 만에 잃어버리면서, 그렇게 내 첫 클라이밍을 마무리했다.
그러다 2022년 가을, 얼레벌레 직장인이 되어 바쁜 하루하루를 살 때였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남자 친구를 소개해 준다고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해서 나간 약속이었는데, 이 친구가 클라이밍에 한창 빠져있었다.
클라이밍을 하면 새로운 사람 만나기도 좋고 너무 재밌단다. 오빠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니까 클라이밍이 잘 맞을 거 같단다. 키도 적당히 크고 원래 웨이트도 열심히 했으니 딱 되었단다. 할 것 없으면 같이 클라이밍이나 하잔다.
그러나 나는 같은 실수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미 한번 시도해 보았고, 그다지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전적이 있기 때문에, 시큰둥하게 젓가락질하면서 “대학생 때 해봤는데, 난 그렇게 재미는 없더라고” 하고, 무심히 클러팅을 거절하면서 안주를 뒤적거렸다.
‘단 음식을 먹고 싶어서 시킨 건데 그다지 달진 않네, 다음에는 이 메뉴를 안 시켜야겠다’라고 안주를 씹으며 생각할 때쯤, 동생의 남자 친구가 한마디 거들면서 치고 들어왔다.
“저희도 클라이밍 하다가 만났어요”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달콤하게 들리던지, “야 이거 엄청 달다 먹어봐” 하고 클러팅에 넘어가 버린 것이다. 잿밥에 더 관심이 있었던 나와 웨이브락의 첫 만남은 이렇게 다소 불순하게 시작되었다.
그럼 단순히 그 이유로 클라이밍에 빠졌냐고? 한다면, 그것은 아니고, 형형색색 홀드와 밝은 조명, 그 사이에서 서로 응원하고 때로는 나이스를, 때로는 아쉬움을 표현하는 그 모습. 웨이브락의 그 분위기가 ‘청춘이란 이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나로 하여금 자아냈기 때문이다.
“여기는 원래 이렇게 다들 응원하는 분위기야?” “응, 아까 나 응원해 준 사람들도 모르는 분들이야”
‘낭만’,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한 단어.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는 이유로 주고 받는 대가 없는 호의라니, 이게 낭만이 아니면 뭐지? 그러고는 내려오니 멋쩍게 고개 숙여 감사합니다, 하고 서로 인사하는 분위기라는 게 퍽 귀엽기도 했다. 잿밥에 관심 있어 절간에 들어온 클린동자가 그렇게 염불에 관심이 생긴 것이다.
나는 낭만이 좋다. 겉은 어른인 척 한껏 시니컬한 말들을 뱉어내지만 아직도 소년 만화를 보면 심장이 뛰고, 언더독의 유쾌한 반란을 좋아하고, 삭막한 세상 속 전해지는 미담에 남몰래 눈시울을 붉힐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웨이브락이 좋다. 웨이브락이 좋다기보다는 사실 암장의 그 낭만 있는 분위기가 좋다. 사람이 너무 많아 뿌옇게 날리는 초크 가루가 보이기도 하고, 매트 위에 발 올리고 눈치 게임을 할 때도 있고, 하물며 내 문제와 겹치는 사람이 있어 머쓱하게 내려오는 순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암장의 그 분위기가 좋다. 내가 운동을 하지 않는 날도, 아는 사람이 운동하고 있다고 하면 굳이 굳이 가서 인사하게 되는 그 마성의 매력이 좋다.
언젠가 클라이밍을 그만두더라도, 웨이브락에 대해서 떠올린다면 항상 낭만 가득했던 공간으로 추억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부상 없이 한평생 운동하면서 그만두지 않는 게 제일 좋겠지만!
아참, 그래서 잿밥은 잘 챙겼냐고? 비밀.
- 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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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을 시작하며 내게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인간관계다.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날이면 큰 스트레스를 받아 집에 돌아가면 곧장 침대에 엎어지기 일쑤인 내가 암장에서는 스스럼없이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어 동작을 물어보고, 더 많은 문제를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클라이밍 모임까지 가입했다. 약 1년 정도 크루 활동을 하며 사람도 얻고 요령도 얻어 좋은 경험을 했지만, 내심 아쉬움이 있었다. 바로 ‘제발 내 홈짐 좀 와 주라!’ 하는 마음.
크루에 막 가입했을 무렵, 자주 받은 질문과 자주 들은 말이 있었다.
“시느 님은 홈짐이 어디세요?” “아, 저 선유도역 근처 서울볼더스요!” “헉, 매운 데 다니시는구나? 잘하시겠다~” “......(제 실력은 처참한데용)”
나의 홈짐을 말하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고는 다른 문제를 풀러 갔다. 한번 서볼에서 같이 운동하시죠, 라고 말하면 ‘트레이닝 하러 가는 곳’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마다 나는 왠지 모를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원정도 좋지만, 내가 주로 가는 곳도 함께 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때 적극적으로 홈짐을 어필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면서 지면을 빌려 서울볼더스의 매력 포인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볼더링 맛집이다! 매운 암장이라고 소문난 것에는 짐작 가는 바가 있다. 나의 홈짐은 빨간색 테이프의 다소 쉬운 문제부터 보라색 테이프의 어려운 문제까지. 모든 문제를 ‘동작의 절묘함'에 초점을 두고 세팅한다는 특징이 있다. 클라이밍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삼지점부터 무게 중심 이동, 인사이드-아웃사이드, 힐 훅과 토 훅 기술을 모든 테이프의 문제에서 만나볼 수 있는 암장이(그것도 계속 시도해도 다칠 것 같지 않게끔 노력하는) 수도권에서 얼마나 될까? 하지만 그만큼 종종 암장에서 부르짖곤 한다.
“초록색 테이프가 이 문제에 붙는 게 맞냐고요!”
둘째, 지구력과 트레이닝 맛집이다. 서울볼더스 선유도점은 크기가 큰 암장은 아니다. 하지만 지구력 벽 또한 볼더링 벽만큼 정말 알차게 채워져 있는 곳이다. 1층의 한구석에는 각도가 세지 않은 (세미) 스프레이 월이 있고, 2층에는 옆으로 긴 지구력 벽이 있다. 벽도 벽이지만, 문제가 특히나 재미있다. 여러 동작을 연습하게끔 출제된 문제를 한두 번 왕복했을 뿐인데 다음 날 근육통에 시달리는 나를 발견할 수 있고, 그 고통을 조금만 참아내면 나도 모르는 새에 힘이 길러져 있다. 실제로 하늘색 난이도의 문제를 풀었던 주에 그동안 힘이 되지 않아 낑낑거렸던 볼더링 문제를 해낸 적도 있다! 2층 지구력 벽 옆에는 다양한 모양의 행보드와 1kg부터 3kg까지의 덤벨, 5kg~15kg의 중량 원판도 구비돼 있다. 보기만 해도 괴롭지만, 친구와 함께 운동하면 여기가 바로 헬스장이다. 일일 이용료 2만 원에 볼더링과 지구력, 근력 운동까지.
이야, 헬스장 12개월권보다 더 싸다!
우리 같이 벌크업 해보지 않으시렵니까.
셋째, 로컬 특유의 느낌이 낭낭한 정겨운 맛집과 카페가 암장 근처에 꽤 있다. 운동 후에는 뭘 해야 하나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단백질을 보충해야 하지 않나요. 여기에 맛있는 커피와 맥주, 막걸리를 곁들인다면 금상첨화지 않은가. 서볼 바로 앞에는 쌀 호두과자와 카페라테 맛집인 카페와 멜론빵과 야키소바빵이 맛있는 일본식 베이커리, 소주를 부르는 수육 식당이 있고, 좀 더 나가면 막걸리와 더할 나위 없는 짝꿍 더덕순대국밥집, 여름의 맛 그 자체 콩국수 맛집이 있다. 따릉이를 타고 간다면 당산역의 족발 골목까지.
입맛대로 골라주신다면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넷째, 추억을 기꺼이 함께 쌓을 친절한 사람들, 강사님이 많다! 클라이머들은 다 상냥하고 좋은가? 싶을 정도로 나는 이곳에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여기저기 여러 암장을 다니며 재밌고 다양한 문제를 맛봤지만, 결국에는 서울볼더스만을 ‘홈짐’으로 부르는 데는 이러한 연유에서인 것 같다. 남들과는 다른 특출한 점이 없어 안전한 길만 걷자, 튀지 말자며 그렇게 색깔 없이 살아가던 내게 때로는 도전하고 모험을 떠나도 된다고, 때로는 실패해도 괜찮다고 모두가 응원해 준 장소여서. 그 결과가 또 퍽 나쁘지 않았기에. 그래서 이 마음을 다른 누군가에게도 나누고 싶다.
그러니 이 글을 보는 여러분, 언젠가 나의 홈짐을 방문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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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obe firefly 이미지 생성, 집과 볼더링 이미지를 더한 일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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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짐”
‘홈-짐’이라는 말에는 어떤 뜻이 담길까. 홈-타운, 집-밥, ‘집-순이’ 같은 비슷한 조어법으로 만든 단어에는 고향, 내가 사는 집, 안전한 공간, 나만의 무엇 같은 의미가 두루 담긴다. 그렇다면 홈짐은 내가 사는 암장, 안전한 암장, 나만의 암장, 시작한 곳. 시작된 곳.
왜 홈짐을 말할까. 내 시작을 톺아볼 수 있어서. 시작점을 찍으면 오기까지의 여정을 그려볼 수 있어서. 내 집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두듯이, 안전한 나의 공간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라서. 그런 것을 궁금해하는 사이나 사람은 퍽 다정할 테지.
나의 홈짐을 말할까. 서울 신촌의 ‘담장’. 내 클라이밍의 시작과 거의 다르지 않은 새 공간. 개장 후 첫 강습에 참여할 수 있었던. 공간도 나도 처음이라서 서로 낯선 맛에 그래도 적응하기가 좋았던 곳. 담장이라는 이름도 썩 귀여워서, 어려서 넘어보고 싶었던 빨간 벽돌담을 닮아서. 새 장소에서는 밥도 잠도 불편해하는 서툰 사람이라서, 그래서 너와 너의 첫이 같다는 게 고마웠다.
홈짐에서 만난 강습생들은 반년 정도가 지난 지금도 사이좋게 지낸다. 강습해 주신 선생님께서는 드물다고 했다. 대개 강습만 모여 듣고 흩어진다고. 선생님도 클라이밍 친구가 생기기까지 수 년이 걸렸다고. 그렇구나, 우린 드물구나. 그런 말을 들으면 자꾸만 더 드문 사이가 되지.
가족이라는 말에는 너무 많은 감정이 담기니까, 짐과 나의 사이가 가족 같지는 않았으면 해. 집처럼, 좀처럼 일어나지지 않는 바닥도 아니었으면 해. 다만 그 기분만, 편히 화장실에 가고 가없이 웃어젖히는 그 느낌만 가져다가 내 짐의 벽에, 홀드 끝에 묻어 있었으면 해.
내가 살며 어떤 벽을 오르더라도, 그게 과연 무형의 벽이더라도. 홈-짐, 집-짐을 생각하면서 턱턱 잡고 밟았으면. 그러다가 떨어져도 푹신하게 받아주었으면. 한 바퀴 데구르르 구르고 멋쩍게 웃으며 털어버렸으면. 그런 집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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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체 2급, 제 위시리스트에 추가합니다! 🤣
- 저도 어제 볼더링 준결승, 결승 직관했는데 반가워요! 직관해 보니 응원하는 맛이 좋아요. ㅎㅎ
- 보통 유튜브로 클라이밍 브이로그나 훈련 팁, 대회 영상 등을 봅니다. 그런데 벽 타는 사람들 인터뷰는 좀 더 다른 분야를 비춰주고,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달해 줘요. 슬스레터만의 킬러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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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2025년 생체 2급 시험장에서 만난다면 알은척해 주세요! 아자아자 💪 그리고 따숩고 자세한 후기 감사해요. 더 좋은 콘텐츠와 인터뷰로 보답할게요!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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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0. 11. 단풍 드는 가을날 47번째 편지 From. 슬로우스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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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스타터 | 단팥 옒 시느 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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