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 홈짐 자랑 대회 마지막 편 To. 구독자 님
오늘 레터는 처절한 자기반성으로 시작할게요. 죄송합니다. 마감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 원래는 인터뷰 콘텐츠를 보내드릴 계획이었는데요. 본업의 야근 쓰나미와 사이드프로젝트의 마감 압박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급하게 반성문 같은 편지를 쓰고 있어요.
아… 한 주만 쉴까?
요런 괘씸한 생각도 잠깐 했지만, 기다리고 있을 구독자 님을 생각하니 괜스레 죄송하더라고요. 일단 SWC 멤버들이 쓴 홈짐 스토리를 보내드리니 인터뷰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알찬 이벤트까지 함께 준비해서 다음 주에 보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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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Home)’이라는 단어는 왠지 모르게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이 있다. 소리 내어 말할 때나 들을 때 모두. ‘집’과 같은 의미지만 한글 단어의 울림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좀 더 부드럽고 여운이 남는달까. 그래서인지 홈이라는 단어의 울림은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홈짐이라고 하면 집에 기구를 놓고 언제든 운동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뜻하는데, 클라이밍 쪽에서는 월 정기 이용권을 등록하고 주로 활동하는 암장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아무래도 클라이머들은 여러 암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집과 같은 암장이라는 뜻으로 홈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난 현재 홈짐이 없다. 처음 클라이밍을 시작했을 때의 암장이 나의 홈짐이었다. 그곳은 작은 공간이었지만 나에게는 다양한 사람들과 음악, 문화를 경험하고 교류하는, 따뜻함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이후 그 공간이 없어지면서 다른 여러 암장을 갔었지만, 이상하게도 맘을 붙이기가 참 어려웠다. 좋고 나쁨을 떠나 홈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을 받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최근 새로운 암장들이 많이 생기고, 클라이밍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더욱 그런 느낌을 가지기에 어려워진 것 같다. 홈짐의 기능이 크루라는 형태로 옮겨 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지금 홈짐은 없지만, 대신 함께 등반하는 친구들이 있다. 우린 방랑자처럼 여러 암장과 등반지를 떠돌아다니며 등반하고 있다. 우리에게 홈짐은 없지만 함께 등반하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홈짐이 있다. 이런 마음만 있다면 어디든 우리의 홈짐이 아닐까.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오늘도 우리는 방랑자로 살아간다. 우리가 등반하는 그곳이 우리의 홈짐이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자유롭지만 따뜻한 방랑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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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을 즐겨하는 분들에게는 홈짐이 있을 법해서 이번에는 홈짐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집하고 가까운 곳, 아니면 크루원들이 다 같이 편하게 모일 수 있는 곳, 이도 아니면, 흠모하는 그 또는 그녀가 있는 곳 등등 홈짐에 대한 기준은 저마다 다릅니다. 그렇다면 제가 생각하는 홈짐은?
바로 ‘인사이드 아웃’이 가능한 곳입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인사이드 아웃에는 감정 컨트롤 본부와 여러 가지 감정들, 기쁨이부터 시작해서 슬픔이와 소심이 그리고 버럭이, 까칠이 등이 나옵니다. 영화는 감정컨트롤 본부의 주도권을 하나의 감정이 지배할 순 없고, 버럭이도 필요하고 실수투성이인 슬픔이도 역시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필자는 성인이 된 어느 순간부터 제 안의 기쁨이와 버럭이, 슬픔이를 본 기억이 희미합니다. 소심이와 까칠이가 감정컨트롤 본부를 장악했고 앞에 소개해 드린 기쁨이와 슬픔이, 버럭이는 한쪽 구석에서 점점 희미해져 갔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사회에서 생활하다 보면 다 그렇게 되는 거고, 그게 순리고 맞게 가고 있는 거야"
하지만, 이 길이 정녕 옳다면 왜 과거 몇 년간 계속 살만 찌고, 까칠이만 점점 커져 결국 짜증이를 만들어냈을까요?
조직 생활, 일상생활 중 짜증이까지 만들어냈던 제가 집 나갔던 기쁨이와 슬픔이, 버럭이를 찾아낸 곳은 바로 저의 클라이밍 홈짐입니다.
'하 또 떨어졌네, 아프고 기운 빠져, 천장만 보이네'
처음엔 습관대로 짜증이가 나오더니, 왠지 평소에 잊고 지냈던 버럭이와 슬픔이가 나오더니, 입가에 미소까지 지으며 기쁨이까지 나온 그 순간은 클라이밍 시작한 지 3년이 된 지금도 잊지 못하고, 아마 계속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근데 왜 또 붙고 싶지!'
"성격은 얼굴에서 나오고, 체형은 생활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더군요. 맞는 말 같습니다. 저는 이 문장의 얼굴 부분에 여유로움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소심이, 까칠이 등 자신의 감정들을 타인에게 투사 또는 무시하지 않고 오롯이 받아들여 인정하고, 체험하면 거기에서 나오는 여유로움이 표정으로 나온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인사이드 아웃을 할 수 있게 해준 장소를 마련해준 저의 홈짐 ‘산본 클라이밍 센터’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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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홈’의 생김새는 왠지 따뜻하다. 히읗 위쪽 두 획은 지붕, 동그라미는 사람, 미음은 공간을 뜻하는 듯하다. 혹은 갓을 쓴 채 평상에 앉아 있는 사람 모양 같기도 하다. 영어 Home의 발음을 한국어로 옮겼을 뿐인데 귀엽고 정겹고 따뜻하기까지 한 홈. 어쩌면 집을 아늑하고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이 글자 홈에 대한 긍정적인 색안경을 씌웠는지도.
그도 그럴 것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언제나 집이었다. 엄마랑 싸우고 괜히 온 동네를 헤집고 다녔던 사춘기 시절에도, 원하던 대학에 떨어져서 진탕 마시고 뻗어버린 스무 살 겨울에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집 앞 놀이터에 앉아 소리 죽여 울었던 날에도, 처음으로 인사평가에서 안 좋은 소리를 듣고 며칠을 끙끙 앓았던 때에도. 폭 안기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엄마 품처럼, 집에 들어가는 행위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는.
우습게도 이런 느낌적인 느낌은 ‘홈짐’에도 통용된다. 다른 암장에서 깨지고, 좌절해도 돌아갈 수 있는 홈짐이 있다는 건 정말 큰 위로다. 갈 때마다 반겨주는 강사님과 손에 익은 홀드들, 암장 근처 친절한 카페와 익숙한 동네 풍경. 비록 부상 후 자주 가지는 않지만 갈 때마다 알 수 없는 에너지를 얻고 오는 기분이다.
사실 우리 홈짐은 스코빌 지수 1만 SHU는 우습게 넘길 듯한 매운맛으로 유명한데, 그런 곳에서 에너지를 얻고 오는 나도 참 나다. (참고로 신라면이 3,400 SHU 불닭볶음면이 4,400 SHU라고 한다.) 문제가 쉽기로 유명한 암장에서 즐겁게 풀고 오는 것도 좋지만 매운맛 홈짐에서 내 실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좋다.
누군가는 너무 정적이라 지루하다고 느낄 스태틱한 무브들에 집중하다 보면 ‘어랏, 여기에도 근육이 있었구나’, ‘손가락 힘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고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나를 마주하기도 한다. 소란스럽던 암장 소음이 페이드 아웃되며 오직 나와 벽만 덩그러니 남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론 완등하지 못한 채로 좌절할 때도 많다. 수없이 많은 좌절 속에서도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는 공간, 그게 바로 ‘홈’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집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는 의미로 자주 쓰는 “Home sweet home”을 오늘은 조금 다르게 말해 보려 한다.
Homegym sweet homeg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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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클라이밍 노마드라고 칭할 수 있는 저에겐 홈짐이 있는 분들이 조금 부럽기도 합니다. 홈짐이 어디냐고 제게 물으시면 “음...홈짐이라.....” 하면서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주제입니다. 하계엔 리드 원정 등반 위주의 클라이밍, 동계엔 아이스 클라이밍까지 하는 저는 시즌 별로, 날짜 별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등반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아, 물론 트레이닝 목적으로 집 근처 암장을 등록하는 방법도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새로운 곳, 새로운 문제를 찾아다니고 있더라고요. 그럼에도 홈짐을 홈짐이라 부르는 가장 유력한 이유가 사람이라는 문구를 보고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비슷한 확보자와 등반하게 된다면,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있는 공간 자체가 홈짐이 되는 것 아닐까.
덧붙여, 영빈 님의 암장 접근 의도가 다소 불순(?)해 보였지만,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필력 덕분에 재밌게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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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오늘 보내드린 정민 님 글이 노마드 클라이머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가 되었기를 바라요. 그리고 지금 있는 곳이 어디든 홈짐으로 만들 수 있는 인생의 확보자를 만나시기를 함께 기원할게요! 답장을 보내주신 분도, 영빈 님도, 저도, 우리 모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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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0. 18. 다음 주를 기약하며 48번째 편지 From. 슬로우스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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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스타터 | 단팥 옒 시느 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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