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용어의 정의와 유래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흥미를 끄는 용어를 만나게 되면, 용어 자체의 사전적 의미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 현시점에까지 사용되고 있는지 늘 궁금증이 일었다. 이는 개인적인 호기심 충족이기도 했지만, 사람마다 용어의 개념을 다르게 인지하고 있는 경우도 많기에 정확한 의사소통에 도움을 주는 부분이기도 했다. 대화하다보면, 어떤 식으로든 의미 전달만 이뤄지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동일한 용어를 쓰고 있음에도 서로 알고 있는 정의가 달라 의사 전달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클라이밍에도 많은 용어들이 있다. 클라이밍 초기 문화 때부터 만들어져 이어온 용어들부터 현대 스포츠클라이밍 문화에서 만들어진 용어들까지.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용어 중 하나가 루트 파인딩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사용하는 루트 파인딩이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다만 용어의 유래를 알고 난 뒤 훨씬 많은 의미가 내포된 용어임을 깨달았다. 게다가 실제 사용 목적에 더욱 부합하는 용어가 있음을 알게 된 뒤, 이따금 이 용어를 사용할 때면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상황에 적합한 용어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클라이밍 경력과 경험이 쌓여갈수록 더더욱 그 느낌은 짙어져 갔다.

스포츠클라이밍에서 루트 파인딩(Route Finding)보다 더 적합한 용어는 무엇일까. 바로 루트 옵저베이션(Route Observation)으로, 대다수가 생소해할 만한 용어일 것이다. 스포츠클라이밍 대회 또는 규정집을 제외하면 흔히 쓰이는 용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더 적합한 용어일까. 번역하면 루트 관찰이라 할 수 있다. 루트 파인딩의 번역인 루트 탐색과 비슷하지만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스포츠클라이밍에선 경기 벽과 홀드의 구분이 확실하고, 다른 벽과의 경계가 모호해 경기 벽을 찾아 헤매는 경우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홀드의 종류나 동작, 크럭스 파악 등의 일련의 과정은 루트 탐색보단 관찰이 더 부합된다.

루트 파인딩은 사전에 [루트를 찾는 것. 암벽등반이나 적설기 등산, 그 밖에 코스를 잘 알지 못하는 곳을 오르려면 이 능력이 필수 조건이며 특히 기록이 없는 곳을 등산할 때 이 능력의 유무가 성패의 관건이 될 수 있다]라고 명시돼 있다.(체육학대사전, 2000. 2. 25., 이태신) 좁게는 등반 루트의 탐색부터 넓게는 등반지를 찾아가는 경로까지 포함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루트 관찰의 의미 또한 내포돼 있지만 행위의 목적이 루트의 완등이 아닌 등반 전체의 종료를 향해 있다는 점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기존에 사용하던 루트 파인딩이라는 용어를 고쳐 써야 한다고 말하고자 싶은 것은 아니다. 루트 관찰의 의미로 대다수가 사용하고 있기에 의미 전달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 필자 또한 루트 관찰을 알게 됐음에도 여전히 루트 파인딩이 더 익숙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본래의 의미로 사용하고자 할 때 오히려 온전히 전달되지 않음이 아쉬울 따름이다. 정확하고 다채로운 용어 사용이 등반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클라이밍 문화를 성숙하게 하고 클라이머들 간에 깊은 공감과 경험 공유를 가능케 하리라 생각한다.

- 끌라

루트(Route): 길, 경로
파인딩(Finding): 찾다

루트 파인딩. 말 그대로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는 것.

클라이밍을 하다 보면 당연히 하는 행위다. 루트 파인딩을 하지 않고 등반하면 무브도 흐트러지고 가면서 길을 개척하다 보니, 내 경우에는 실패도 많았다. 그래서 대부분은 실패를 줄여 체력도 적게, 쓰고 효율적으로 문제를 풀기 위해 루트 파인딩을 한다.

운이 좋게 루트가 눈에 들어오고 무브가 그려지는 경우 기분 좋게 플래시를 할 수 있다. 그렇게 모든 문제에 대해 다 루트 파인딩을 한다면 좋겠지만, 나는 루트 파인딩 하려고 홀드를 노려봐도 무브나 동작이 그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만큼 다양한 문제를 풀지 않고 할 수 있는 스킬이 적어서 그럴수도 있다.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직접 부분 부분 손으로 홀드를 잡아보고 실패하면서 루트를 완성하게 된다. 이렇게 같은 문제라도 각자의 조건이 다른 만큼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루트와 무브도 보이고 본인만의 개성이 돋보이게 된다.

우리네 인생도 그런 것 아닐까 싶다. 인생이란 커다란 문제 앞에서 루트 파인딩 하듯 꿈을 가지고, 삶을 설계하며, 이런 길 저런 길을 생각해 보고 본인의 선택에 따라 다양한 루트를 만든다. 모두가 같은 인생이 아닌 비슷할 수도 많이 다를 수도 있는 각자만의 삶을 살아간다. 언제는 플래시 하듯 쭉쭉 나아가기도, 언제는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그런 삶의 순간도 있을 것이다. 중간에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몇 번이고 도전해서 완등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실패와 성공, 고민과 도전으로 흘러간다.

누가 잘했다 못했다는 생각보다는, 모두가 노력한 것만으로도 아름답게 보이는 그런 인생들을 살았으면 좋겠다.

- 코캔

요즘 습관 중 하나는 낯선 곳을 가면 항상 왼손엔 스마트폰 길 찾기 앱을 연다는 것이다. 이 요망한 기계는 참 편리하다. 낯선 곳에서 이놈만 있으면 맘에 안정감이 든다. 앞으로 가게 될 길에 대한 예측, 심지어 돌아가는 길과 단축 길도 알려준다. 클라이밍에 있어 루트 파인딩은 이러한 길 찾기 앱 같은 존재이다. 단지 클라이밍 길 찾기 앱은 ‘스스로’ 제작해야 한다는 점이 스마트폰 길 찾기 앱과 다르다.

클라이밍에 있어서 루트 파인딩이 가진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특히 클라이머의 목적이 온 사이트(첫 등반에 완등하는 것을 뜻함)라면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루트 파인딩은 클라이밍 등반에 앞서 벽에 대한 정보를 눈으로 사전답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본인이 등반할 벽에 대한 모든 것을 종합해 길 찾기 앱을 제작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낯선 곳에서 길 찾기 앱을 사용해 목적지를 찾아가는 상황에서 폰을 떨어트려 앱 작동에 이상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마치 시간이 촉박하거나, 실수로 루트 파인딩을 끝까지 못 하고 등반을 시작해 중간에 루트를 잊어버린 것처럼.

물론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전완근도 점점 아파온다. 하지만 인간의 몸은 길 찾기 앱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요망하다. 본능적으로 팔을 늘어뜨려야 더 효율적으로 쉴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신체적으로 힘을 덜 들이는 다리 위치도 본능적으로 찾게 해준다. 이런 현상을 경험하게 해주는 훈련코스 중 하나가 5분 인터벌 훈련이다. 5분 인터벌 훈련은 본인이 떨어지지 않을 만한 코스를 하나 정해 끝까지 완등 후 5분 쉬고 다시 처음부터 완등하는 식으로 10번을 반복하는 것이다. 시작 후 5번째, 6번째 순서가 되면 기존의 루트 파인딩은 의미가 없어진다. 신체는 힘듦을 최소화하기 위해 처음 근력이 있을 때와는 다른 발 자리를 본능적으로 찾고, 팔은 자연히 늘어뜨리게 된다.

낯선 길에서 앱 없이 목적지를 찾을 때도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식은땀이 나지만 막상 맞닥뜨리면 시야가 넓어진다. 주변 건물이 보이고, 주변 길도 보이고, 멋들어진 글씨체로 꾸며놓은 상점가의 간판도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누구에게 길을 물어봐야 친절하게 대답을 해줄까?’를 찾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당황에서 여유로움을 조금 찾게 되면 낯섦과 힘듦이 주는 상쾌함마저 느낄 것이다.

클라이밍에 있어서도 루트 파인딩을 손에서 잠깐 떨어뜨려 보면 낯섦이 주는 상쾌함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잠깐 손에서 길 찾기 앱을 떨어뜨려도 영화처럼 무서운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 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