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원히 클친 하자! 🙏 To. 구독자 님
117년 만의 폭설에 출퇴근 대란이 일어난 요 며칠, 구독자 님은 평안하신가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처럼 최근 클라이밍 업계에도 찬 바람이 부는 듯한데요. 몇몇 암장들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마음이 시리더라고요. 예전에는 금요일 저녁이면 매트 위에 발을 올려놓지 않고서는 홀드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는데, 확실히 요즘은 한산한 곳이 늘어난 듯해요. 특히 규모가 작고 지점 수가 적은 암장일수록 클라이머들의 발길이 뜸해지는 것 같은데요. 개성이 살아 있는 작은 암장들이 우리와 더 오래 함께할 방법이 없을까요?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면 아래 버튼을 눌러 살짝 공유해 주세요!
구독자 님은 모쪼록 별 탈 없는 겨울을 보내시길 바라면서 오늘 레터를 보내드려요.
오늘 준비한 레터는요! 💁 1️⃣ SWC: 클라이밍 친구에 대한 슬라클 멤버들의 이야기를 전해 드려요. 2️⃣ 슬스 Pick!: 슬스팀이 선정한 클라이밍 콘텐츠를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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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잘 맞는 사람은 좋아하는 것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싫어하는 것이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친구 옒이 떠올랐다. 옒은 정말 놀랍도록 나와 싫어하는 것이 같다. 어떤 상황의 ‘쎄함’을 설명할 때 다른 친구들은 “그게 왜 이상해?”라고 묻지만, 옒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거 나만 불편해?”라고 예민한 질문을 던졌는데 “아니, 나도 불편해”라고 편들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심지어 이 모든 대화를 눈빛으로 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싫어하고, 불편해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에 너무 많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풋살, 농구, 하키 같은 단체 운동이 불편하다. 열댓 명이 정해진 시간에 모여 다 같이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린 둘 다 시간 약속을 잘 못 지킨다. 아마 우리가 단체 운동을 했다면 매번 지각해서 팀원들에게 민폐를 끼쳤을 거다. 그리고 저질 체력이라 조금만 뛰어도 헉헉대며 팀 성적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쳤겠지. 내 존재가 타인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이 상황이 우리는 정말 싫다.
실제로 여자 풋살이 유행했을 때 잠시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주변에서 같이 하자고 권하기도 했지만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시도조차 못 해본 스포츠들이 열 손가락을 꼽고도 남는 듯하다. 어쩌면 이런 성향 때문에 우리가 클라이밍을 오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클라이밍은 우리 둘만 시간이 맞으면 언제든 함께 만나, 하고 싶은 만큼 실컷 하다가 돌아갈 수 있으니까. 만약 클라이밍이 단체전이었다면?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한 번은 옒이 클라이밍 약속에 2시간 정도 늦은 적이 있다. 그날 집에서 출발할 때 왠지 옒이 늦을 것 같아 30분 늦게 출발했는데도 그는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좀 심한데?’ 싶은 마음도 잠시 일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혼자서 이런저런 문제를 풀고 있으면 옒은 올 테고, 같이 운동하다가 밥 먹으러 나가면 그만이었다. 가끔은 내가 늦는 날도 있는데 옒도 특별히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게 클라이밍의 장점이었다. 혹시 내가 늦더라도 상대가 오직 나만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는 것.
가끔 불안할 때도 있다. 우리 둘이 너무 잘 맞아서, 둘이서만 놀다 보니 지각과 같은 안 좋은 습관을 고칠 기회를 잃는 건 아닐까 하는. 둘이 싫어하는 것들이 같아서 함께 싫어하다 보니 편견이 더 강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그래도 아직 둘 다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에 각자 모난 부분들을 고쳐가며 살아가는 듯하다. (회사 및 공적인 자리에는 안 늦는다. 사적인 약속도 서로가 아니라면 안 늦으려고 한다.) 언젠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만나는 사람이 서로밖에 없게 된다면, 그때는 좀 심각한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때 가야 알 수 있을 테니 그때까지 옒과 함께 즐겁게 클라이밍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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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 친구'라는 주제를 들었을 때 바로 암벽화가 떠올랐다. (크루원들 미안...) 암벽화는 클라이밍 할 때 없어서는 안 될, 함께 등반하고 내 컨디션을 체크해 주는 좋은 친구다. 물론 암벽화 없이 벽에 붙어서는 안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암벽화를 처음 마주했을 때 그 강렬한 인상이 잊히지 않는다. "암벽화는 작게 신는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처음 클라이밍 할 때는 알지 못했다. 대여화는 좀 넉넉하게 신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신었던 '벨로체'도 넉넉한 사이즈에 유연한 재질이라 좋았다. 하지만 새로 산 'vsr'을 마주했을 때는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원래 신발은 발이 덜 피로하도록 편한 게 맞다고 알고 있었는데 암벽화는 그 편견(?)을 뒤집었다. 딱딱한 느낌과 발에 꽉 끼다 못해 발 모양이 변할 것 같은 사이즈! 하지만 이게 정 사이즈라니 신종 고문인가 싶다가, 중국 전족 문화에 대한 생각까지 스쳐 갔다.
어쨌거나 암벽화는 클라이밍 할 때 꼭 필요한, 내가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친구다. 가끔 발이 터지면 미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덜 믿었구나'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해보자'고 다독일 만한 친구다. 이러다 창갈이 보내서 다른 친구랑 놀게 되면 아쉽긴 하지만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는 것도 하나의 묘미다.
암벽화와 나를 생각하면,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습과 많이 닮았다. 암벽화들은 다양한 모습을 가졌다. 비단 암벽화뿐만 아니라 사람들, 어떤 다른 물건들, 상황들도 그렇듯이. 처음에는 낯설었다가 점점 친해지고, 어떤 암벽화냐에 따라 나에게 맞는 친구가 있고 내가 맞추는 친구가 있고, 또 편해지기 어려운 친구가 되기도 하니 말이다. 의견이 안 맞거나 트러블이 생겨 멀어졌다가도 잘 지내나, 살아는 있나 하고 문득 떠오르는 사람들을 우리는 친구라고 부른다.
뭔가 가족 같달까.
매번 암장 다녀올 때마다 냄새나지 않도록 잘 말려주고, 가끔 암벽화 냄새를 킁킁하면서 “윽!” 혹은 “음~스멜~” 같은 장난을 한 번씩 치기도 하고. 때로는 발이 터져서 화가 나다가도 이 아이랑 같이 완등하고, 얘를 믿어서 성공한 수많은 무브, 완등이 떠오른다. 이 친구 덕분에 클라이밍을 재미있게 했던 것도 사실이니까.
그러다가도 조금은 너덜너덜해져서 창갈이 보내야 하나 할 때는 또 미안해지기도 하는 감정이 나도 모르게 생겨난 것 같다. 내가 정이 많다면 많을 수도 있지만 자기 암벽화를 함부로 하는 클라이머는 아직은 본 적이 없다.
클라이밍을 하지 않았다면 만나보지 못했을 이 느낌을 끝까지 소중하게 생각하고 싶다.
TMI. 난 사실 아직 창갈이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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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호그와트 덤블도어 교수가 해리 포터의 관자놀이에서 뽑은 기억의 실을 넣은 '펜시브(pensieve)'를 아시나요? 영화 속 펜시브 용도는 주인공인 해리가 사건 해결에 어려움을 겪을 때 기억의 파편을 더듬어 사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제게 클라이밍은 하나의 펜시브인데요. 저만의 펜시브를 통해 찾은 클라이밍 친구인 '지심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심이를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하게 된 것은? 클라이밍을 통해서입니다. 지심이를 제대로 마주하고 나서야 어렸을 때나, 학생이었을 때,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도 '난 지심이를 몰라, 내가 지심이를 친구로 둘 리 없어' 하면서 친구인 지심이의 존재를 애써 부정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심이는 친구로 지내기에는 부적절한 상대라고 사회로부터 많은 오해를 받습니다. 하지만 지심이는 친구로 있을 때와, 친구이지 않을 때 상대방에게 속삭여 주는 멘트가 달라집니다. 아직 친구이지 않을 때는,
"봐봐, 네가 애써서 한 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보잘것없는 거야 그러니 노력할 필요가 없어."
친구가 되었을 때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노력 대비 효율이 높지 않지만,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해보자."
이런 식이 됩니다.
지심이는 시야가 좁습니다. 하지만 다른 등반자들이 탑을 정복하거나 크럭스를 넘어가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해주고, 같이 하자고 독려해 주죠. 어느 순간 지심이와 제가 바라보는 방향이 같아지고 함께 이인삼각을 할 수 있을 만큼 든든한 조력자가 될 수 있음을 클라이밍 3년 차인 지금은 말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쯤은 여러분도 예상하셨듯이 저의 친구 지심이의 성은 '자격'입니다. 앞으로 제 인생에서 클라이밍이 가르쳐준 지심이를 인정하고 같이 이인삼각을 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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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느끼기에 나는 클라이밍 친구가 나름 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클라이밍의 세계로 인도해 준 친구, 3년째 강습을 함께 듣는 수업메이트, 리드 클라이밍을 알려준 친구, 나의 빌레이 파트너 등등. 클라이밍을 논할 때면 빼놓을 수 없을 만큼 모두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지만, 오늘은 암장을 방문하고 바위를 마주할 때마다 내 곁에 슬그머니 나타나는 한 녀석을 말해볼까 한다. 바로 내 머릿속의 작은 친구, ‘투지’라는 녀석이다.
투지를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클라이밍을 막 시작했을 때는 그저 다치지 않고 친구들과 오래오래 즐겁게 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으니까. 문제를 풀다가도 팔이 닿지 않을 만큼 먼 곳에 다음 홀드가 있으면 도전하지 않고, 부러 뛰지 않고 어머머! 하면서 내려왔다. 그래도 마냥 즐거웠다. 몸을 이렇게도 움직일 수 있다는 감각이 신선했기에. 누가 초록을 몇 개 했네, 하늘을 풀었네, 하며 경쟁하는 게 아닌, 오로지 나와 벽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클라이밍임을 알아서 더더욱 이 녀석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
어쩌면 경쟁, 싸움, 호승심, 누군가를 의식한다는 감정을 최대한 느끼지 않기 위해 오래도록 발버둥 친 시간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대학 입시를 위해 내 옆의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 경쟁자라고 주입받았던 것들(그럼에도 나는 내 친구들이 무척 사랑스러워서 그 간극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내 성적이 앞자리 친구보다 낮다는 걸 깨닫고 내가 그럼 그렇지 뭐, 하며 자조했던 것, 내가 쓴 글이 아닌 타인의 글이 상을 받은 경험, 나보다 더 잘 쓰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 사람을 시기 질투하지 않기 위해 애썼던 모든 날.
그래서 투지의 목소리가 처음 들려온 순간이 무척 생경했다. 이렇다 할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평소와 같이 퇴근 후 강습을 들으러 센터에 갔고, 수업 문제를 풀었을 뿐이다. 뛰어서 홀드를 잡는 다이노 기술과 손에 의지하지 않고 발로만 홀드를 딛고 일어나는 밸런스를 익히는 수업이었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동작을 연습하는 시간이었고, 역시나 나는 모든 문제를 풀지 못했다. 여느 때였다면 ‘아, 키가 작아서 안 닿아요!’, ‘너무 무서워요~’하며 포기했겠지만, 어디선가 호통이 들려왔다.
“너 계속 이런 식으로 할래?”
물론 친구들이나 수업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한 말은 아니었고, 나에게 스스로 한 소리였다. 타협과 포기에 익숙했던 내가, 자신에게 낸 큰 소리. 그것은 어쩐지 ‘너 계속 이런 식으로 살래?’라는 뜻으로도 다가왔다. 나는 왜 그동안 타협하고 포기하는 마음으로 살았을까. 나는 정말로 나의 한계를 명확히 알아서 그렇게 행동했을까. 상처받지 않고 싶어서 쉬운 길만을 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 따끔한 호통을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바라보자고 생각했다. 수업이 끝나고 센터 마감 시간 직전, 그때까지도 나는 남아 있었다. 못하는 동작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있어 보자고 다짐하며. 남은 힘을 모아 힘껏 발을 박차고 뛰었다. 홀드를 향해 간절한 마음으로 손을 뻗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홀드는 조금씩, 점차 가까워졌고 마침내 잡아냈다. 그리고,
“거 봐, 할 수 있네.”
투지가 내게 또 말을 건넸다. 아무도 듣지 못하고 나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지만, 그때만큼은 노벨문학상의 수상자로 호명된 듯이 무척 기뻤다.
첫 만남 이후로 녀석은 내가 암장에서 어, 이거 좀 어려워 보이는데? 하고 주춤할 때면 ‘쫄?’이라고 스치듯이 말하고 지나갔다. 그 한마디에 나는 속절없이 불타오르고 마는 것이다. 꼭 풀겠다는 마음이 샘솟고, 으으! 하는 이상한 기합을 넣으며 홀드를 잡는다. 그리고 한편, 바라는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한다. 언제까지나 투지의 목소리가 들리기를. 이 말에 귀 기울이며 포기하는 나로 살기보다 도전하는 나로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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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 친구에 대한 콘텐츠를 찾아보다가 외국인 클친 영상을 찾았어요. 한국인보다 한국 바위를 더 잘 오르는 외국인 클친이라니! 게다가 영상에서 소개하는 제주도 바위와 바다가 예뻐서 저도 모르게 영상에 빠져들었죠. 어느샌가 2025년 버킷리스트에 제주도 클라이밍 & 프리다이빙 여행을 적으면서요. 내년 여름엔 황우치해변에서 클라이밍 하면서 산방산 너머로 해 지는 풍경을 볼 수 있을까요? 휴가를 맘껏 쓸 수 있는 내년이 됐으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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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방학 때마다 만들던 시계 모양 생활 계획표로 현재 일과를 그리면 클라이밍과 관련된 영상 시청, 독서, 트레이닝 등... 눈 뜨고 있는 시간 중 1/4 이상 클라이밍에 할애하는 것 같아요. 내 성향과 맞지 않았던 대기업 직장생활을 22년간이나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내를 만나서 결혼할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슬스레터를 구독할 수 있는 것도... 모두 클라이밍 덕분이니 좋아하는 일이란 말로 정의하기에는 부족한 느낌이에요. 내 인생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희로애락을 함께 한 순간들이니 라이프스타일이란 말이 더 적합할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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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이밍이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쳤네요. 무언가를 오래 버틸 수 있도록,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가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에요. 슬스레터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된다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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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29. 온라인 클친 구독자 님을 생각하며 53번째 편지 From. 슬로우스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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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스타터 | 단팥 옒 시느 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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